'VOICE/mic for VOICE'에 해당되는 글 74건

  1. 언론 해설서 1. 친미(親美) 반미(反美) 1/2
  2. 언론 해설서가 필요하다.
  3. 파업!!
  4. 언론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다.
  5. 글을 읽을때 객관적 사실과 필자의 의견을 구분하여 읽어보세요.
  6. 바람이 분다
  7. 대안 언론의 선전이 필요할때이다.
  8. 안철수 대선 출마 공식 선언
  9. 아이폰 5 발표되었지만
  10. 한달 만에 말 바꾼 MB, 이럴거면...
  11. 대중을 지배하고 조정한다는 것. 1
  12. 안철수 협박 사건의 프레임 전환
  13. 대학생들의 정치참여!!
  14. 삼호 주얼리호 구출과 언론
  15. 차명진이 사는 나라의 황제는 누구인가?

언론 해설서 1. 친미(親美) 반미(反美) 1/2



수학이나 물리문제를 풀때 사건과 현상을 단순화 시키면, 핵심을 명확히 하고 문제를 빨리 푸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접근 또한 단순화하면 문제가 빨리 풀어진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풂에 있어서 단순화는, 필요한 기준은 빼먹거나 생략하므로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겨 결국 틀린 답 내지는 잘못된 결론을 도출해 내기 쉽다. 단순화가 빠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제대로된 답을 도출해내기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말이다.


이전의 한국은 가난과 굶주림을 극복하고자, 경제성장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사회문제나 시민의식등 다양한 기준들에 대한 논의나 공감대가 결여된채, 최우선 목표는 '돈'으로 모든 문제를 단순화 시켜 답을 도출해 냈다. 그 덕에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 성장도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패러다임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성장의 열매를 넘어서 발전을 잠식해 나 갈 수도 있을것이며, 그러한 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아니 어쩌면 oneway를 걸어오며 존재했던 그 비용이,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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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해설서 1. 친미(親美) 반미(反美)


친미와 반비는 친할 친(親), 또는 반대할 반(反)의 글자와 미국의 미(美)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여기서 친(親)과 반(反)은 좋고 싫음이라는 문제로 단순해져 그렇게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미(美)라는 단어에 있어서는 생각 해 볼 문제가 발생한다. 


친(親) 

1.좋아할 

2.찬성함

3.친함


반(反)

1.싫어함, 

2.반대함

3.친하지않음


미(美)

1. 국가로서의 미국

2. 미국 정치권으로서의 미국

3. 미국 행정부로서의 미국

4. 미국 경제로서의 미국

5. 미국 군으로서의 미국

5. 미국 문화로서의 미국

6. 미국 국민들로서의 미국


친미 반미라는 두글자 엄청나게 다양한 의미가 담길 수 있다.

친미(親美)

1.미국 국가를 좋아함

2.미국 국가를 찬성함.

3.미국 국가와 친함

4.미국 국가를 싫어함.

5.미국 국가를 반대함.

6.미국 국가와 친하지 않음.


7.미국 정치권을 좋아함.

8.미국 정치권을 찬성함.

9.미국 정치권과 친함.

10.미국 정치권을 싫어함.

11.미국 정치권을 반대함.

12.미국 정치권과 친하지 않음.

....


#등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 간에는 그 뜻이 대동소이한 경우도 있으나, 어떤 뜻으로 잡느냐에 따라 큰 의미의 차이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위에서도 알수 있지만, 단어의 뜻을 정하는 것은 범위를 한정하는 측면도 있고, 의미를 함축하는 기능도 있고, 그는 다시 의미를 숨기는 기능도 있다.


#네오콘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미국 국가에 대한 반대로 또 이는 미국 국민 및 미국 문화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어 매도되는 반미가 되기도 하고, 애플의 이전까지 없었던 문화에서의 혁신에 대한 찬사가 미국은 싫어하며 애플은 좋아하는 앱등이로 낙인 찍히고, 미국의 성숙된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이 친미라는 이름으로, 동의한적 없는,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렇듯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 크기도 큰 집단을 평가함에 있어 모든것을 친미와 반미라는 단편적 언어에 집어넣어 버림으로, 각 개인의 의사는 정보의 생산자들의 편의에 맞게 입맛대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패거리가 만들어 지기도 하고, 세력이 형성되기도 한다.


#물론 칼로 무자르듯 저러한 단어를 단정지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전체적 경향성이 있으니 부분 또한 그럴수 있다는 생각도 틀린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또한 말 그대로 경향성일 뿐이과, 확률일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이 논쟁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도는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통치하는 사람은 이렇게 축약된 단어를 좋아한다. 이러한 단어를 던져 놓으면 각자가 편한 뜻으로 해석해서 사용할 테니까,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국민들 또한 경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위의 의미들중 하나를 대신해 친미, 또는 반미라는 단어 안에 담는다. 때로는 비교 대상이 아닌 비교대상을 가지고 논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의미를 다른 단어에 이입하여 논쟁하기도 한다.


## 함축된 다어의 정확한 논의 대상을 특정하자. 논의 대상을 특정하는 일로 최소한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언론 해설서가 필요하다.



1.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주체는,

투표가 존재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권력으로 직결된다.

그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먼저 성찰하고 고찰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다.

지금은 고찰과 논의의 단계가 아닌, 필요한 비판이 필요한 단계이다.

 

2. 사회가 혼란스런운 이유 ; 언론의 과(過).

1) 여론의 주체인 국민은 각자가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2) 그렇기에 국가의 일에 일일이 찾아보고 공부하고 상세히 알기 힘들다.

3) 그래서 대의민주주의에서 집단의 일을 대신할 대표를 뽑는것이고, 그것이 선거이고, 그들에게 말 그대로 집단과 단체의 일을 전문적으로 맏기는(위탁하는) 것이다.

4) 그들에게 도덕과 양심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힘을 자신의 절제와 양심상에서 대신 처리 하도록.

5) 그러나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다는 것은 '힘과 권력'행사 할 수 있는 권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6)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보의 접근이 제한된 국민에게, 언론을 통한 단편적 소스를 던짐으로써, 여론을 '파닥파닥' 시끄럽게 만든다.

7) 그들이 던지는 소스는

7) -ㄱ. 자극적 문구 (충격, 경악, 알고보니. 헉. 종북, 섹스, 정신나간,...)

7) -ㄴ. 논리가 결여된 선정적 단어.

7) -ㄷ. 지역간, 계층간, 남녀간, 국가간, 집단간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단어

7) -ㄹ. 오독과 오해를 일으키는 단어

7) -ㅁ. 프레임을 설정한 언어등을 사용하여 국민을 혼란에 빠트린다.

 

이 모두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낚시에서 말하는) 밑밥들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파괴력만을 생성하고 그들이 자생해 나가는 원천을 여기서 얻는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국내 언론의 수익구조 및 언론의 지형을 알필요가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 보도록 하겠다.

 

8) 위 ㄱ.~ㄹ.은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면 적절히 걸러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9) 그러나 ㅁ. 의 경우는 다르다. 언론 해설서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언론 해설서가 필요한 이유

1) 정보를 소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정보의 생산자가 공급한 정보를 근거로만 사건을 판단 할 수 밖에 없음.

2) 정보의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사실의 일부만 제시될 수도, 사실 이외의 부분까지 제시될 수도 있음.

3) 이렇게 제시된 정보의 경계가 정보 생산자의 프레임이 됨

프레임 효과의 대표적 예 ->  http://chulin28ho.egloos.com/viewer/4772801

4) 프레임이 어떻게 설정되는가에 따라, 사건은 악이된기도, 선이되기도 그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

5)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정보의 소비자는 자신이 매일 생각하고 부딪히고 자신이 대다수의 시간을 투자하는 분야가 아니므로(절대적으로 정보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으므로), 정보의 생산자가 제시한 프레임에 한정 될 수 밖에 없음. 즉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사건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됨.

6) 정보의 소비자는 제한된 프레임을 근거로 여론을 형성하게됨.

7) 하여, 여론의 위험성은 국민의 어리석음이 절대 아님. 비전문가 들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그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첫째 잘못이요, 그들에 기생해 살아가는 언론이 둘째 잘못이다.

8) 이를 방지하고자, 또는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정보의 소비자(국민들)이 지혜로워 질 수 밖에 없는 상황.

9) 순수한 사실에 대한 접근은 일반 국민들로서는 불가능한 일.

10) 다만 정보의 생산자가 얼마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가? 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정보를 생산하는가, 정보 생산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얻고자 하는가는 판단 할 수 있음.

11)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주의 사항들이 있는데 이를 시간이 날때마다 다뤄 보기로 하겠음.

 

* 주의사항 *

이 해설 또한 필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임으로 반영하고 읽기를 바랍니다.

 

* PS 1. *

언론 정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테클, 피드백, 기발한 아이디어, 토의, 논의, 모두모두 환영입니다.

 

 

Warming up....~~~~~~~~~~~~~~~~~~~~~~~~~~~~~~~~~~~~~~~~~~~~~~~~~~~~~~~

 

# 언론 해설서 0. 검찰

주의해야할 논리. 일반화의 오류. 시장의 오류. 극장의 오류.

 

검찰은 집단이다.

집단은 여러 구성원으로 구성된다.

정의 구현을 위해 밤낮 애쓰는 검사. 국가가 최우선인 검사, 법에 의거한 모든 판단을 하는 검사, 인정 많은 검사, 명예를 중요시하는 검사, 진보적 검사, 보수적 검사, 자리가 중요한 검사, 정치를 꿈꾸는 검사. 타이틀이 중요한 검사.

그들의 개별적 판단은 말그대로 개별적이다.

그러나 그런 검사들로부터 발생하는 행위가 언론을 통할때는 개별적 이름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다.

'검찰' 이라는 한 단어로 그 집단이 모두 동일시 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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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파업.
근래 우리 사회에서 '파업'은 '불법'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지는 일이 많아졌다.
아니! 이제는 파업=불법 이라는 웃지못할 공식이 성립되었다.
물론 불법 파업도 존재 한다.그러나 굳이 '10프로의 썩은 사과'를 설명하고자 '힘의 이동'과 '역사의 반복'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오늘 내가 하고픈 말은 하나니까!!

왜 그들이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가?! 제대로 헤아려 보자는 거다!!

언론에서는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파업'이라며
적어도 나의 동의 없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고 있다. ...
언론이 '국민'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은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뭐 계속해서 언론이 떠들어 댄다면 '베이컨의 시장과, 극장, 동굴 어쩌면 종족'의 4관왕을 달성하며 진정 '국민이 동의 하지 않는 파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진정 '의도를 가진, 또한 힘마저 가진' 이들의 이야기도 접어두자.)
중요한 것은, 권력이 발생하는 근원인 '국민'으로서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조금은 자세히, 그리고 마음을 열고 알아 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언론이라는 '권위'가 떠들어 댄다 하여 앵무새 마냥 그 권위를 옮기지 말고, 또한 답을 먼저 정해 놓지도 말고, 하나하나 시비(是非)를 가려보자.
입에 풀칠하기에 바빠 내일이 아닌 일들에 무관심 하지말자.
또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나의 스트레스 풀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쉽게 이야기 하지도 말자.

어리석은 국민이 많아 질 수록 그 사회는 위험해 진다.
또한 지혜로운 국민이 많아 질 수록 다가올 사회의 위험을 예비할수 있다.
독일 나찌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 있었고, 미국 메카시의 사건이 보여주는 교훈이 있었다.
전쟁이후나 60년이 지난 지금이나 먹고살기에 바쁜 우리네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인용구가 있다. 아직 정확한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그의 인터뷰에서 비롯된 것이고,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이기도 한 마르틴 뉘밀러의 '그들이 내게 왔을때'이다.

"(독일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wikipedia-

쌍용차,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코레일, 의사협회에 이르기 까지...
하나 더 얻고자 현재의 주어진 것을 포기하며 까지 대치상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남지 않은 '하나'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경계에 서는것이다.
너와나 우리가 서로 손잡고 굳건한 반석을 다질때,
대의민주주의는 그 균형을 유지한다

언론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다.



정국이 혼란스럽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여론의 수렴과정도, 생각의 공유도, 발전적 토의도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있다.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하기에 정당한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고 오히려 분열 시키고 있는가? 지금껏 주류가 권력을 잃었던 시기에 그들이 행한 비상식적 논리와 논조 그리고 정권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들이, 반성을 위한 자기 고백이 아닌, 마치 상대 진영이 악날한 무리인 마냥 자신들이 행했던 이야기들을 덧씌우고 있다.


이미 국민은 정치적 논쟁들로 극한 피로에 몰려 있다. 언론이 정론을 펼치지 못하고 권력화 되며 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했기에, 그리고 거기에 순진한 국민들은 '애국'이라는 이름 하에 선동당하고 마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매국이고 괴물인듯한 논조로 이야기 하고 있다. 


MB 정부 5년 그리고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나며, 좌파로 분류된 진영의 이들이 과격해 진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통의 채널을 막고, 자신들의 의견과 배치되는 이들의 의견은 모두 매국이고 악이라 단정지어 버리는 상황에서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따랐던 대통령은 정치적 쇼에 의해 세상을 달리 했다. (정치검찰은 자신들의 자존심에 흠짓을 낸 대통령을 가장 저열한 방법으로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망가트려 갔고, 거기에 기생 언론 또한 그들의 존재가치를 이유를 잊은채 쇼를 받아 대대적으로 떠벌려 갔다. 간접살인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달리 해도 마음이 무거운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 아니라면 정신과 감정을 받아보길 바란다) 대통령은 일국의 대통령이고 공인이며, 많은 사람들이 좋든 싫든 오랜 시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직접적인 일면식이 없어도 자신의 주위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 주변 사람의 죽음은 살아 남은 사람으로 하여금 적지않은 심적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하물며 그를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대한민국이 바른 길로 나아가길 희망하며 나라를 걱정했던 이들은 아픈 마음에 목소리도 내 보고 외쳐도 보았지만, 공허한 메아리 였다. 오히려 그들은 매국이며 종북이며 이적행위라 정부와 여당은 색칠을 해 댓고, 여론은 신나게 나팔수 역할을 했으며, 거기에서 여론은 많이 혼란스러웠다. (전형적인 언론의 왜곡은 다음편에 다루도록 하자) 


이젠 정치가 국민들의 감정싸움으로 까지 퍼져나갔고, 그들은 든든한 우중을 얻었다. 정권에서 적절한 액션이 취해지면, 적절히 언론이 포장을 해서 국민들에게 던져준다. 국민들은 의도된 대로 낚여서 자신의 애국심과 지적수준을 자랑질 한다. 무엇을 위한 애국이고, 누굴 위한 외침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본적은 있을까? 


반대로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소시민들은 억압하는 정부,언론,사회 아래 자기검열을 먼저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 그른 일일까?의 문제가 아닌 매도당하거나 매장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이다. 나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못하는 궁색한 변명으로 지금 껏 침묵하게 만들었다. 거센 비바람이 불거든 그 비바람이 지나길 기다렸다 때를 봐야 한다는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민들의 정치적 피로도는 점점더 깊어갔으며, 사회는 더 혼란 스러워 져 갔다. 정권을 잡았으면 정무에 힘쓸일이지 그들은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쇼맨십에 더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가릴게 많은지 반대의 의견을 정치쟁점으로 만드는 일에 더 열중이다. 남들은 뭐라하지 않는데 자신들이 제발저려 자신들이 과거에 해댔던 수법들을 지금에서 유체이탈 화법을 써 다른 진영에 덧씌우고 있다. 


절대 정권이 언론을 장악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또 바른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들은 기자의 역할과 언론인이 지녀야할 역할을 잊은채, 자신들이 양심이 아닌 생각하기 쉬운 논리로 애써 합리화해, 정부의 말을 받아 적고만 있다. 또한 그들 언론이 이슈화 시키고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것은 권력이나, 실상은 권력이 아닌 약해 빠진 야당과 국민을 재물 삼아 그들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정부가 직접적으로 언론을 장악한 것은 아니나, 일부 라인을 통해 언론이 장악 된 것은 맞는것 같다.


양심의 언론이 바로 서야, 잘못된 논리로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어떠한 바른말을 한다 하여도, 진보가 이야기하면 종북 좌측의 빨갱이가 되고, 우측이 하면 애국이 된다. 좌가 말하면 논리가 없고 자신들만 옳다 이야기 하고, 우가 말하면 논리가 지당하고 바른말이 된다. 어떠한 정당한 이의 제기도 선동이 되고 반란이 된다. 바른 여론이 국민의 참된 귀가 되고 눈이 된다면, 정권에 대한 평가는, 또한 정치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레 이루어 질 것이다. 애꿏은 국민들의 편을 가르지 말고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란다.  


(글이 또 산으로 갔다. 그냥 답답한 한 국민의 넋두리라고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읽을때 객관적 사실과 필자의 의견을 구분하여 읽어보세요.



정치 이야기라 불편하게 느낄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지킨 조국이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일으킨 모국이며,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에서 벌어 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선조로부터 물려 받고, 후손들로부터 빌려 존재하는 지금의 이나라를, 그 누가, 어떠한 권리로, 개인들의 욕심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격한 감정을 누르고, 누구의 말이나 생각이 아닌, 자신의 눈과 머리로 현 상황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누군가와 언쟁으로 이기려 사건을 보지말고, 댓글로 내 주장을 피력하고 관심받기 위해 주장하지말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읽어 보십시오.

글을 읽을때 철저히 객관적 사실과 필자의 의견을 구분해서 읽어 보십시오.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싶다면, 답을 정해놓지 말고, 사실을 향해 자료들을 찾아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정보가 제한적이지는 않는지, 글쓴이의 프레임에 갇혀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보며 읽어 보세요. 
글쓴이의 이전 논리와 지금의 논리가 일치하는지 따져도 보세요. 혹 지금 하는 말과 말하고자 하는 내용 간에는 불합리 한것이 없는지, 오류는 없는지 한번 따져 보세요.

안보를 이야기 하며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바람이 분다



.

.

바람이 분다.

.

.

핍박 속의 빛은 

그리 일찍 별이 되어 

울었다.

지상의 짐 짊어진채 
어두운 밤 별 되어 오르메
그 누구는 알고, 또한 누구는 모르더라.

알음알음 
별이 오길 기다리메
오지 않아 슬픈 싹들이여...

남쪽 하늘 남십자성 부근
힘에 겨워 지평선 오르지 못하메

마중나가볼까 
오지않는 별빛이여...

바다로 흘러온 별짐 흩어 보니
사람사는 세상 위했던 짐이요
남겨진 싹들의 빚이라

그믐 밤하늘 별빛도 없이 
아침을 기다리는 싹들은
겨울을 맞이하는가?!
다시 밤을 맞이하는가?!

그래도 
노란 
람개비는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by 윤주호



대안 언론의 선전이 필요할때이다.



#

 

 

 

왜 생산적 여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소모적 논란만 양산되는가??


모두가 화합과 통합, 신뢰를 요구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크게는 옳바른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문제점에서 부터, 언론환경의 구조적 문제, MB정권 이후 언론장악에 이르기 까지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한다. 언권유착과 언론장악은 이번 글에서 논 외로 하자. 이번 글에서는 단순히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언론 환경만을 따져보자.


사실 이전까지 언론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빠지지 않는 주체가 조중동이었다. 보수 메이저 언론이 독점하고 있는 국내 언론환경의 문제점은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혹자는 인터넷의 보급, SNS(Social Network System)의 활성화로 그런 문제점은 없다고 하지만 분명 따져보아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신문사를 넘어 포털에 대해서 까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외치지만 아직 폐쇄적인 한국사회 
필자는 작금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1) 포털의 독점 과 2)훼손된 정보의 신뢰도 에서 인했다고 본다. 인터넷의 순기능적 측면을 바라보며 발전을 기대하는 우리로서는, 대한민국 10명중 7명이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 녹색화면이 뜨는 놀라운 집적도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고 수용되어야 할 토론의 장은 요원하기만 한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1)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기사와 기사 배치, 인기 검색어들은 이슈의 집적도를 높임과 동시에 그 파괴력또한 높이고 있다. 이는 포털을 권력아닌 권력으로 만들었고, 법적이든 도의적이든 책임은 쪽~뺀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만들었다. 정보의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찾기 시작했고, 진실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보의 생산자, 또는 배포자들이 그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금 안에서 머물며, 끼리끼리 모이며 서로 심적 안정감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2)배역을 맡은 행동대장이 앞장서 싸우가 시작하면 소속 부대원들은 스스로 핑거파이터를 자청하며 최전선에서 싸운다. 가상의 싸움이기에 게임 아닌 게임을 즐긴다. 결국 다양성의 인정과 상호존중 속에서 이루어 져야 할 토론이, 공격적 토론으로 이어지고, 이도 잠시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 이제 이는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여론이 되고 분열을 가져온다. 대안적 변화를 기대했던 SNS역시, 포털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모두들 겉돌기만 하는가??

정보의 불신은 파워블로거의 몰락이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오로지 자기 하는 일이 좋아 제품을 객관적으로 리뷰하고 글을 쓰던 블로거들이, 자신이 오래도록 쌓아온 신뢰를 업체아 팔아넘기며 자신이 쓴 글이 짜라시가 되어버린 수많은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구매자들에게 구매의 기준이 되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자 역할을 했다면, 업체의 스폰을 받은 이후의 블로거는 단지 상품의 광고를 올리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업체의 스폰을 받고 난이후 블로거가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척 한다면, 이는 정보의 소비자, 상품의 소비자에 대한 기만 행위이며 사기의 요소도 생각 해 볼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정보가 날로 늘고 있으니 인터넷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에 대한 정보를 넘어 정치 사회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우리가 마음 편히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것이다.

 

이럿듯 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면 토론에 있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전제가 사라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전제 위에서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하기에 접점을 찾을 수 없고, 합의접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접점을 찾을 수 없음은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논란만을 양산하는 토론이 되고, 이는 곧 토론이라 할 수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논의라는 것들이 논란의 양산만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보의 소비자임을 인식하자!

그렇다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생산적 논의가 되려면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어떤것 들이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가지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 스스로가 정보의 생산자도 될 수 있지만 소비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보의 생산보다 소비를 더 크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보의 소비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보의 소비는 우리가 유용한 방법으로 정보를 이용하여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는 것 또한 정보의 소비이기도 하겠지만, 정보의 소비는 제화의 소비와는 달리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로 정보 접하므로 나타나는 현상들, 즉 정보의 생산자들이 어떠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정보를 생산하고, 그에 우리가 반응해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이루어 지는 것 또한 정보의 소비에 속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공된 정보는 말과 글인 언어로 이루어 지며, 말과 글은 화자 또는 필자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초중고때 배우는 비판적 글읽기, 또는 듣기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비판적이라는 것은 무조건 정보에 대한 반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글 또는 말에서 전달하는 바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또한 자기가 읽고 싶고, 듣고싶은 것만 들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정보를 접해야만 정보의 소비가 동시에 건전한 정보 생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해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무조건 적으로 반대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듯, 자신이 정보의 소비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조그만 더 생각해 보자. 정보의 생산자는 정보의 유통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모든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정보 생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정보가 가져올 효과를 위해 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즉 정보가 가져올 효과에 대해 부적적 요건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또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다보니 핵심을 이야기하거나 간추려 이야기 해야 하기때문에 선택적으로 정보를 가공할 수있다. 쉽게 말해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제한된 정보내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재생산 해야하는데, 정보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흔히 말하는 말의 앞뒤 다 잘라 먹고 한 부분을 이야기 하는 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는 필자 또는 화자의 역량 부족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소비자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며, 능동적으로 정보의 전달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보의 전달 전략에 있어 위의 방법만 있는가?? 빼는 방법에는 문맥을 잘라 특정 부분만 제시하는 전략이 있는가 하면, 아예 주제 자체를 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물급 정치인의 비리가 터졌는데, 연예인 스캔들이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더라, 또는 어떤 정치인이 좋은 정책을 내놓았는데 부정적 이야기들만 기사화 되더라, 또는 국가의 여러 정책들이 있는데 유독 하나의 정책들만 기사화 되더라 등등. 앞서 말한 문맥을 자르는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 또는 기사 내에서 행해지는 방법이지만, 후자의 방법은 아예 기사 단위로 누락이 되거나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의 논의가 이루어 져야 하지만 일부 방향으로만 논의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를 필자는 프레임의 선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특히 이 프레임의 선점은 대한민국이라는 한국어를 언어로 쓰는 여론환경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작 이슈가 되는 몇몇 사안들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 지고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이슈가 되지 않는 부분은,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담론들은 그냥 그림자의 뒷편에 방치된 채 우리가 생각지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를 배포하는 포털과 메이저 신문사들 언론사들이 높음 점유율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전략이다.

 

메이저 언론의 프레임 선정 능력. 그리고 화두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의 독점.

지금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이기에 사회적 문제를 단편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나와야 하고, 또 전문가들은 다양한 화두를 던져, 국민이 최대한 폭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 이야기를하기에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열악하다 못해 썩어있다. 소수 여론에 대해 마이크 마저 뺏어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논의만 진행하게 하는 환경이 썩어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소비자가 더 현명해 져야 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언론이 바로서야 하는 이유이고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이유이다. 문제점은 이렇듯 드러나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언론의 특성상 그들이 활동하는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하기도 하고, 그들이 권력화 된다면 분명히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들은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 지게 하는것, 스스로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스스로 신뢰를 쌓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적으로 외부에서 고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대안 언론 또는 그에 버금가는 대안 세력을 키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것. 1인 미디어가 활성화 되고, 대안언론들이 커야하는 이유이다. 이는 독점 포털이 기사를 전송하고 배치하는 환경에서는 어려움에 틀림없다. 또한 언론이 광고수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1인 미디어, 대안 언론을 경쟁력 이는 언론으로 키우는 지혜 말이다.

 


 

 


안철수 대선 출마 공식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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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열 기자 truth710@ <오마이 뉴스>'MBC,조중동 기자 안철수에 질문 안했나 못했나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회에 우리가 생각해야될 문제에 화두를 던지고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바랐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선거 과정부터 (우리 언론이 좋아하는 단어)혁신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거창한 공약이나 신축건물 조감도 같은 청사진은 없었다. 그렇다고 대중을 휘어잡는 말솜씨나 카리스마 있는 연설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연설문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것은 진정성이다.


많은 언론이,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안철수 원장을 걱정의 눈으로 보고 있다. 어른신들이 말씀하시는, 그리고 선배 정치인들이 말하는 연륜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틀이 오늘을 거쳐 내일에까지 흘러 간다면이야, 그 연륜 꼭 필요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원하는 것은, 또 우리에게 지금 당면한 숙제는 정치의 개혁이다. 개혁이 어제와 틀을 같이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 또다시 정치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는 일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정치를 정치(政治)교과서에 묻어놓고만 생각을 했지, 우리가 일상의 우리 삶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라를 운영해 나가고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정치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는 아닐까?  지금껏 정치인들이 말하는, 그리고 그를 옮겨적은 언론이 말하는, 그리고 그 언론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가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자문해 보자. 정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적어도 17대 대선에서 필요했고, 18대 대선에서 더더욱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정치 경력이나 공약이 아니다. 지금껏 후보가 어떤 일들을 해왔고, 미래에 제시할 약속들이 진정성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인듯 하다. 선거때면 늘 등장하는 레파토리는 공허한 공약(空約)을 녹음해 틀어놓고, 자신의 정치력을 앞세우며, '여러분의 일꾼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표를 구걸하지 않았던가? 결국 공약은 비어있었고 후보와 후보의 측근만 배를 불리고 정치단수만 렙업하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있어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매번 있는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도 공인, 연예인도 공인이지 않는가? 


어떤 사람의 미래를 보려면, 그사람의 과거를 보면 된다고 했다. 늘 말로만 하는 정치가 남기는 것은, 그저 말과 정치인 자신의 이익뿐이다. 실제로 지난 과거에 그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정책을 펼쳤고, 어떤일들을 했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인 것이다. 진정성 있는 공약을 보자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의 연장선 상에서 보자는 것이고, 우리의 기대와 희망이 헛되지 않고자 하는 확인인 것이다.


앞으로 험란한 길이 예상된다. 항상 개혁 주자는 자기 반성의 딜레마에 빠져 개혁의 추진력이 약해져 왔다. 이는 기득 정치세력의 각본,주연, 언론의 편집,배급으로 완벽한 호흡을 이루진 공격이었다. 특히 현재의 언론 상황에서는 국민마저 설득해야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어젠다와 정책도 중요하지만, 수구 세력의 비상식적 공격에도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아이폰 5 발표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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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현지시각) 드디어 아이폰 5가 발표되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혁신은 없었다'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인거 같다. 막상 출시가 되고 사용을 해 봐야 하지만, 그전까지 잡스가 선보였던 환희와 감동은 없는듯 하다. 사실 절묘한 타이밍에 거의 공짜 수준으로 내려갔던 갤럭시s3에 눈길이 갔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 폰의 경우 새로산 핸드폰의 기쁨은 잠시, 6개월 정도 지나면 왠지 구형이 되어버린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바, 바로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렇게 보면 삼성의 전략 아닌 전략은 대단하다. 이같은 절묘한 타이밍에, 통신사만의 출혈경쟁으로, 점유율을 한껏 높여놓는게 말이다. 물론 삼성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주 몇겹이 쌓인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 모든 것을 해 냈으니 말이다.


냉소적으로 들리는가? 삼성을 향한 살케즘이라 여겨지는가?? 또한 내가 애플빠나 앱등이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는 어떨까?? 지금 필자의 나이 28, 나보다 나이가 5살 어린 선풍기가 아직도 내 옆에 있다. 무려 23년 된 선풍기다. 모델명 SF-1409W. 23년간 매년 여름을 나와 함께한 선풍기다. 소음 없다. 발열 신기하리 만큼 없다. 한번은 에어컨을 사기위해 막 틀어 놨던 적도 이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나봐~ㅠ_ㅠ) 그래도 심한 발열이 없다. 중간에 몇대의 선풍기가 거쳐갔는지 모른다. 오로지 23년간 한결같이 내곁을 지키는 녀석이다. 거기에는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아래와 같은 로고가 새겨져 있다.



사실 나는 '삼성의 품질'하면 이 선풍기가 가장 먼저 떠 오른다. 우리 부모님 또한 삼성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가전제품의 대부분을 줄곧 삼성만 고집해 왔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건희 회장이 품질경영을 외쳤던 93년 이후의 삼성제품은 현재 우리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짧으면 3개월 길면 4~5년을 못버티고 새로운 제품로 바꾸어야만 했다.


왜일까? 기계공학을 공부했던 나로서 학부때 배운 신뢰성 공학이나 생산 공정에서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20년전 보다 분명히 학문이 발전을 했으면 발전을 했지, 퇴화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제품은 이토록 엉망인 것일까? 경제나 경영을 공부하다 보니 답은 나온다. life cycle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만 놓고 본다면 수명이 몇배 더 긴 제품을 만들 수 있으나,  marketing의 측면에서 보면 이윤을 거둘 수 있는 적절한 life cycle을 만들어야 하기때문에 제품의 수명이 단축 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물론 life cycle을 줄임으로써 얻어지는 설계비용 절감 및 원가 절감의 효과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풀리는 제품은 그 주기가 무척 짧은듯 느껴진다. 특히 유행이나 흐름에 민감한 핸드폰의 경우는 말이다. 출시 주기가 짧은 삼성의 경영전략을 탓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드시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것은, 삼성의 국내 소비자에 대한 태도이다. 유행에 따라 또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단기간 제품을 사용하고 바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2년~3년을 쓰고하 하는 소비자도 있을것이다. 보통의 소비자들이 하나의 폰을 1년정도 사용한다고 치면, 삼성의 출하부터 단종까지의 기간은 너무나도 짧지 않은가? 그렇다고 펌웨어의 판올림은 어떤가? 출시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초기 구매자들(거의 제값주고 핸드폰을 장만한)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삼성의 새 핸드폰을 사고도 그 기쁨이 2~3개월을 가지 않는 이유이다. 스마트폰 이전도 그렇고, 스마트 폰 이후도 옴니아, 갤럭시 모두 어떠한가?



"Consumers make choice, not make mistake"

삼성은 애플과의 특허분쟁에서 삼성측 변호인이 최종변론 중 한 말이다.

소비자들은 선택을 하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소비자들이 하는 것은 선택이지 실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언론은 삼성과 애플의 현상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전달해야 할 것이다. 애플 또한 자국내에서 찬사와 혹평이 엇갈린다. 삼성도 그렇듯, 애플도 미국내에서 찬사도 있고, 비난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의 보도 방향을 보면 미국내 비난 여론을 침소 봉대하여 국내에서 이슈화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하면 고부가가치 전략이고 남이 하면 돈을 긁어 모으는 행위라는 프레임을 덮어 씌우는 것이다. 애플 또한 (우리나라의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이윤창출이 우선인 기업이다. 지금 껏 애플은 고가격 정책을 유지해 왔고, 한때 그 전략이 소비자들로 부터 외면을 받아 기업의 엎어질뻔했던 적도 있고, 수장이 몇 차례 바뀌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어지는 라인업을 앞세워, 높은 가격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로 부터 선택을 받았다. 애플이 소비자들로 부터 선택을 받은 이유는 분명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환경일 것이다. 이전까지의 윈도우 기반 OS나 안드로이드 OS 또는 삼성의 프로요의 복잡했던 인터페이스와는 달리,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사용법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은것이다.


"Apple create a product, Samsung produce a product"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애플은 제품을 창조하고 삼성은 단지 생산만 할 뿐이다.'였던듯 하다.

누가 봐도 큰 차이가 없다. 단순히 키패드가 사라지고 홈버튼이 하나로 대체되고, 모든것이 간단하게 작동된다는 것이 모든것이다. 기술적인 측면만 놓고 본다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소비자로 부터 선택받은 이유는, 핸드폰을 최신의 또는 신기한 기술들의 집약체가 아닌,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면 편리하고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제품의 생산이 기술만의 발전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는 인문학이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전의 삼성을 생각해 보자. 삼성 핸드폰의 광고는 재미있는 기술 또는 성능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 어디에도 소비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줄 것인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기술을 적용했으니, 또는 이만큼 빨라 졌으니 구매해 보세요~' 밖에 되지 않았다. 즉 애플은 소비자를 위한 제품의 생산이 경영 전략이었고, 삼성은 광고를 통한 구매 욕구의 유발을 경영 전략으로 세웠던 것이다. 이 모든것들이 현재 언론들이 말하는 종이 한장차이다. 콜롬버스가 계란을 세울때 주변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깨지 못했던 것 처럼, 이시대의 애플은, 정확히 말해 스티브 잡스는 그 계란을 깨고 세웠던 것이다.




 "Do you like Samsung? Buy apple"


물론 결과적으로 애플의 특허공방의 승리는 IT분야의 발전을 저해할지도 모른다. 정보와 기술의 공유가 또다른 발전을 이끌기에 이러한 기술들을 공유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상 특허를 다른 경쟁기업에 대한 공격의 도구로 보고있는 일부의 기업들이 존재하기에 특허는 기술의 보호를 넘어 공격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의 자국내 여론은 애플의 이번 소송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우세한듯 하다. 이런 미국의 언론 환경을 보면 애플의 발전은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언론환경과 여론을 보면, 삼성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군다나 삼성의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와는 달리, 세계무대에서 약자의 동정론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깝고 한숨만 나온다. 지금 국내 소비자들이 삼성에 줘야 할 것은, 유행에 따라 구매한 핸드폰의 값이 아니라, 삼성의 발전을 위한 고언(苦言)인듯 하다.







한달 만에 말 바꾼 MB, 이럴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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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만에 말 바꾼 MB, 이럴거면...' '...왜 그런 말을 했었냐?!'라는 뒷 말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일보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발언에 대한 입장 번복에 관해 의아스럽다, 또는 미처 몰랐다는 식의 기사 제목을 뽑는다. 실제로 기자들이 그런 번복이 의아스럽거나, 또는 미처 몰랐던 것은 아닐것이다. 언론사의 데스크로서는 정부에 잘보이기 좋은 기사여서 썻고, 이제는 다시금 바른 기사를 써야 하기때문에 저런 제목을 뽑았을 것이다. 차마 일왕사죄를 운운하며 강경 발언을 했던것이 지금껏 새누리장(옛 한나라당)이 주장해 왔던 진짜 포퓰리즘이었던 것이다. 



http://durl.me/3bwrxg

한달만에 말 바꾼 MB, 이럴거면... 한국일보 김동국 기자



그러나 아직도 사건의 본질을 덮으려는 기사가 보인다.



http://goo.gl/wJ5QA

해외 언론 잇단 '한 때리기'.... 배후는 일본 세계일보 김동진 기자


현재 해외에서 한국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것에 대해 일본이 배후에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에 대한 잘못은 없고, 여론이 불리하면 남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현 정부의 형태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생긴다. 일본이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이후 기다렸다는 듯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서두르고 있다. 세계일보의 보도내용이 사실이고, 또한 일본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로비를 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에게 결코 좋은 결과로 돌아올 수 없는 문제이다. 이전까지 독도는 대한민국의 실효지배 하에 있고, 역사적으로도 우리 영토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만 모여도 호랑이 한마리를 만든다(三人成虎)고 하였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리 명백한 우리 영토라도 분쟁지역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인것이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시사군도, 난사군도 등을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러한 지명을 분쟁지역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름들을 알았을까? 일본의 속내는 세계적 관심을 끌어, 국제 재판소로 이를 분쟁화 하여 이끄는 속셈이었다. 이를 이명박 대통령은 일왕사죄등 강경한 어조(어쩌면 외교적 결레인지도 모른다)를 써가며 정국돌파의 카드로 꺼내들고 써 버린 것이다. 실직적인 정책등으로 독도 수호 의지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말로 국내의 여론을 등에 엎고 일본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우리가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토록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이면 왜 ICJ가 존재하고 UN이 존재하고, 외교적 예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막무가내로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대한민국 필드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뜻대로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이라 대한민국의 언론과 여론을 움직였지만, 세계는 좀 더 힘있고 돈있는 이들이 언론과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성 있는 정책인지, 포퓰리즘인지를 구분 하는 힘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 진실을 쫓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나올것이다.







대중을 지배하고 조정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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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우리나라가 이토록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적은 없는듯 하다. 대외적 요인으로는 세계경제의 위기와 분쟁, 세계 정세, 주요 국가들의 국가 지도자 교체시기가 겹치며 그 중요도가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겠지만, 대내적 요인으로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커져서 일 것이다. 여기서 대내적 요인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 만약 필자가 언급한 이유가 아니라면, 다른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현상에 대해 설명 가능한 이유를 말이다. 물론 필자 또한 정권 교체라는 단어로 단정지어 표현했지만 그 속 내용들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정치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경제대통령의 이름표를 달고 1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다.  10년만의 정권교체인 만큼 보여줘야 할 것이 많았고 조급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이름 좋은 정책들을 쏟아내며 속도전을 벌였다. 반대는 묵살되고 그들만의 드라이브는 계속되며, 절차와 합의의 민주주의는 후퇴하였다.


경제

세계경제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부자감세, 대기업 중심의 발전 정책, 지표개선만을 위한 정책으로 실제 국가 경제 지표 상승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국민을 위한 경제에는 즉, 물가안정에는 실패했다. 대다수 힘없는 국민들을 상대로 '서민 경제를 살려 보겠다'며 당선된 그가, 고환율과 부자감세등을 통해 일부 재벌만을 살렸다.


사회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동시에, 전두환 시절의 지역감정 만큼이나 큰 국가적 분열을 초래했다. 뿐만아니라 사회를 경직 시켰다. 이명박 정권이 각종 언론사들을 장악해 나가며 정부의 입맛에 맛는 뉴스를 만들고, 여론을 형성했다.  진정성 없는 정책과, 계산된 홍보,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와 거꾸로 흐르는 여론, 무엇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지 대중을 혼란시키며, 대중은 싸우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고 권력을 멀리해야 할 언론들은 칼 대신 펜을 들고 국민들을 단도리 하며,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렸고, 대중을 분열과 반목으로 이끌었다.


데자뷰 

정치도 하나의 통치로 본다면 지금 이시대의 정치(통치)는 언젠가 한번 본듯 하다. 일본이 처음 조선을 식민통치하려 할때, 무력으로 통치를 하려다 저항에 부딪혀 문화 말살정책 및 이.간.질.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했다. 그러한 통치의 진화(?)가 조선을 36년간 손쉽게 식민통치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주체는 바뀌었을 뿐 눈에 만이 익은 구도이다. 국정의 운영을 통치정로 생각하는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과 많이 닮아 있지는 않은지.

2012년이 대선을 포함한 정치에 뜨겁게 달궈진 한해였다면, 2013년은 언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언론의 개혁이 필요하다. 언론이 올바른 역할을 하며,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할때, 대중과 여론은 바르게 작동할 것이고, 그때만이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고가며, 토론이 이루어 질 것이다.

 








안철수 협박 사건의 프레임 전환




빠르게 프레임이 전환되고 있다.


녹취록도 없고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 하겠지만, 안철수 교수측의 성격상 신중히 고려하고 가진 기자회견으로 생각된다. 즉, 안교수 측이 주장하는 "협박"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순히 친구사이에 '우리가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나중에 공세를 취하더라도 이해해 달라.' 정도의 귀뜸으로는 아침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그말을 전했다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친구사이에 걱정이 되어 미리 하는 말이라면, 밥이라도 먹으며, 또는 술이라도 한잔하며 나눌 수 있는 문제인데, 아침 출근시간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다니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물론 정준길이 '갑자기 생각나서' 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 전문을 보면




'죽는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죽인다'가 아니라 '죽는다'이다. 이는 실제로 협박의 뉘앙스가 묻어나오는 '죽인다'가 아닌 '망한다' 또는 '크게 엎어질꺼야'라는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 원장에게 그것을 말하고 나오지 말라'라는 것은 불출마 종용에 해당되니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진실 공방 여부에 따라 협박이 더 추가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이미 불출마를 종용한 팩트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의혹에 대해 애써 떠도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해 버렸는데, 정준길의 박근혜 캠프에서의 역할로 보나 그의 위치로 보나 결코 떠도는 소문을 전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누가봐도 안철수 저격수 역할로 안철수 전담을 맡고 있는데, 설령 그의 말이 친구에게 귀뜸해준 정도였다 하더라도 그의 박근혜 캠프네 역할로 봤을때 심각한 압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이후다. 


기자회견과 동시에 조선 동A JTB 등 종편에서는 빠르게 "협박"에서 빠져 진위여부부터 프레임을 몰고 갔다. 그 이후 "협박"보다는 안철수 교수측에 일고 있는 의혹에 대해 포커스를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후 저녁방송에서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정리해 버리고 있다. 여느때 같았으면 이정도 이슈는 우리나라 언론환경에서, 앵커의 말처럼 메가톤급 뉴스 꼭지가 되었을 터인데, 보도에서 비중을 줄이고 있는 추세이고 또한 잠잠해 졌다. 


안교수 측은 두가지 의혹이, 진위여부를 떠나, 여론에 오르내리며 언론사들이 정략적으로 이용될 것임을 감내하면서도 불출마 종용에 대한 사실을 터트렸다. 하지만 거대 권력과 언론을 등에 없은 박근혜 캠프는 '불출마 종용 협박'을 무마시키고 '안철수 여자와 뇌물'이라는 검색어들만 남긴채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교묘하게 편중된 시각임을 흐리고 객관적 이야기를 한다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나의 편파적임을 밝히고 이야기 하겠다.

지금 우리가 다투어야 할 것은 상식과 비상식이다. 상식은 비상식의 정략적 공격을 받으며 너덜너덜해 지고, 비상식은 자신들에 대해지는 검증에 대해 정략적 공격이라며 방어막을 펼치고 있다. 또한 심판이고 감시자가 되어야 할 언론을 등에 업고 사람들의 가치 판단마저 흐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왕좌왕하는 국민에게 잘못을 탓할수 없는 노릇이다.


오만하게, 그러나 절박하게 야기 한다.


안철수 교수는 대권이 목표가 아니다.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고자 행동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권력만을 위해 거짓 슬로건을 휘날리는 자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네들이 권력이 목표고 슬로건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면, 안교수는 아젠다와 그의 생각 자체가 슬로건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겐 대권을 출마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대권에 불안한 그들이 대선을 출마하느냐 마느냐의 프레임으로 몰고가는 이유이다!!








대학생들의 정치참여!!




글의 시작에 앞서 먼저 현충일인 오늘, 애국 이라는 이름하에 목숨읕 받치신 모든 선열들을 기리는 시간을 잠시 갖고 글을 시작합니다.

 

먼저 지난 게시글을 읽다 한가지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정치' 라는 것에 있어서인데요.

모두들 딱딱하게 들릴 수 있고, 먼저 거부감부터 들 수 있지만,

1) 일부 '누군가'의 문제일 수 없고, 지금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모든것들이 정치와 연관이 되어 있기때문에,
2) 잘못된 '정치'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가져올 수 있기에 글을 올려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치적 논의를 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것이 금기시 되어왔습니다.

적극적으로 금지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쉬쉬하며, 또는 정치는 "다~ 거기서 거기야"라며 언급하기를 꺼려왔죠.

사회적으로는 공무원과 언론의 '정치적 중립' 요구되며, 사회는 전반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기에 이르리렀죠.

누군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던거죠.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 대학생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까지 정치는 멀리해야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것이 정말 금뱃지 단 사람들이 파란지붕 아래서 싸우는 것만이 정치일까요??

 

다음은 인터넷 사전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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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
개인 또는 사회 집단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 과정, 집행 과정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것으로부터 정치 체계, 사회 체제의 변혁을 꾀하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행동을 총칭함

정치적 자유 [ political freedom , 政治的 自由 ]
외국어표기
politische Freiheit(독일어)
정치적 자유란 정치에 관한 또는 정치적 활동이나 목적을 위한 자유를 말한다. 특히 그 중 정치적 목적을 위한 언론·출판·집회·결사·단체행동의 자유와 정당의 자유 및 참정권(특히 선거권)의 자유로운 행사가 가장 중요하다. 입헌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제도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회의 균등이 모든 국민에게 현실적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제한될 수 있다(헌법 제8조 2항 4호, 37항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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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적 활동)이라는 것은 국회에 있는 입법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전에도 명시되어 있듯 정치활동의 주체는 개인 또는 사회 집단입니다!! 누구나 다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것이죠!!

그러면 무엇을하는가?? 모두 자신이 원하고 내 이웃이 함께 원하는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단 그렇게 원하는 일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어서는 곤란하겠죠!!)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듯, 국민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가집니다. 국민의 권리이죠.


잠시 학교내 상황을 볼까요??

#1

이번 축제때 어떤 가수를 불렀으면 좋겠음? 또 뭐했음 좋겠음??
난 싸이 불렀음 좋겠던데!!
난 UV가 오길 바래!!
100대 100미팅 워뗘?
좋은 생각인데!! 그거 하자!!
아 이번에 우리 가수 섭외비 줄여서 장학금으로 돌리는건 어때??
그럼 어떻게 줄이지?? 기업 프로모션을 이용해서 가수를 부르는건 어떨까??
그럼 축제가 너무 상업적이지 않을까??문제가 있을꺼 같은데.
비용도 아끼고 장학금으로 돌릴 수 있으니 좋은게 아닐까? 다음 할술제는 학술제 답게 준비하면 되지.
그럼 이번 축제는 이렇게 비용을 아끼자!!


이런 작은것 같이 보이는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들도 넓게 보면 정치입니다.

구성원이 원하는 바가 반영되고, 논의를 거쳐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 말이죠.

그럼 이런 정치적 활동이라는게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2
이번 축제때 뭐할래??[냉무]
[무플][무응답]
축제!!
[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겠죠??

자신들의 정당하게 누릴 권리에 대해 참여하고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것, 그래서 좀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것이 정치라는 것이죠.

 


#3
대학 등록금이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게 터무니 없이 비싼것 같다!!
한번 다 같이, 이렇게 올라 있는 등록금이 올바른 상황인가 생각해 보자!!
정부가 조금 힘이 들겠지만 잘못된 세금제도 개혁과 대학이 조금만 노력하면 바꿀 수 있겠다!! 그럼 한번 바꿔보자!!
그렇게 지금 살인적인 등록금이 반으로 줄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것들이 일련의 정치입니다.

 

사람이 모여서 살기 시작하고, 무리를 이루며 생활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즉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고, 누가 조금 더 먹으며, 누가 무리의 통솔자가 될것인지 결정하기 시작할때부터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꼭 입법자들이 하는 활동, 신문에서만 보는 일들이 정치가 아니라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고, 의사가 반영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정치가 시작된것이죠.!!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정치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해서 우선, 정치가 우리 삶과 전혀 동떨어져 있을 수 없음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정치적 논리에 대학생들이 이용당하는가? 대학생들이 정당의 정치적 활동을 이용하는가?

대학생들에게 "정치적이지 말라"는 논리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싶은데요.

제 주장은 이러합니다!!

오히려 '대학생들에게 "정치적이지 말라"는 논리'가 이미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보통 20세 이상의 성인이 대부분일테죠?? 그렇다면 대게 이 모든 대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있겠죠??

투표권이 있다는것, 유권자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의사를 투표를 통해 직접적으로 행사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이 뜻을 펼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대신해서 이룰 수 있을 대표에게 투표로서 지지하는 것이죠!!


만약 대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논리는,

대학생들이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사리분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휩쓸린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미성숙한 그대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나요?? 처음부터 더 늦은 나이에 투표권을 줘야지!!

20세가 넘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법적으로 자신을 책임 질 수 있고, 또한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이죠!!

또한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기성세대의 대한민국이기도 하지만 20대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기도 하다는 말이죠!!

더 나아가 앞으로 30대 40대 50대의, 즉 기성으로서 우리가 살아가야할 미래 대한민국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오해 없었으면 하는 것의, 이것은 세대 갈등이나 절대적 분류 기준이 세대인 것이 아니라, 여러 민주주의 의사 요구 중 하나로서의 젋음층이 말하는 20대입니다. 민주주의 의사결에서는 누구나 읜견을 게재할 수 있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오히려 대학생 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는 정당을 이용해, 사회적 문제(내가 포함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거죠!!

바꿔 말하면 유권자가 정당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러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며 가치입니다!!


(한가지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해 나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에서 기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a.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포식하여 얻은 민주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분 각자가 하나하나 깨어있고 권리를 찾아라 주장하는 것이지
  b. 절대 자신만을, 또는 자신이 속한 잡단의 이기만을 위해 권리를 찾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c.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되도록이면 사회 전체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위해 그 권리를 행사하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된다는 이유 중에 하나인 미 성숙함,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데 대해서는

반은 틀렸고, 반은 맞다고 봅니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정보의 전부를 접하지 못하고, 단편적 정보를 접했을때 잘못된 판단을 할 확률이 높죠.

그런 면 판단력에 대한 문제는 나이가 아닌 정보의 공개 내지는 정확성의 문제입니다.

대학생 뿐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비전문가들 모두가 포함 되는 것이죠(나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원인해 대해 이야기 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정보에 관한 내용인데요!!

사회적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자신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기에 여론은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 형성되죠.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우리가 접할때 어느정도 가공된 상태로 우리에게 도달되죠.

fact(사실)에 opinion(의견)이 가미된 정보들이 대부분이죠. 또한 이런 fact들도 문제들의 전체를 다 설명해 주는 fact가 아니라 부분적 fact일 수 있죠.

때론 거짓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판단에 영향을 미치도록, 유리한 fact만 모으고 불리한 fact는 배제시켜 정보를 형성하기도 하죠.

물론 거짓된 정보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나, 여론을 형성하는 우리들은 이렇게 부분적 fact들을 잘 맞추어 판단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투표권을 행사해야 겠죠!!

하지만 자신의 일에 바쁜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fact들을 다 검증해 볼 수 없습니다. 이미 가공된 정보들만으로 판단을 내리는데 참고 하는 거구요!!

그렇다면 다른것은 안되도 우리는 이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바른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고 감시 할 수있는 겁니다!! 또한 양심적으로 해달라 요구 할 수 있는겁니다!!

여기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은 언론이 될 수 도 있고, 교육기관이 될 수 도 있고, 크고 작은 단체가 될 수 도 있는겁니다.

요구는 fact는 fact로 알려주고 반드시 의견은 의견임을 명확히 해 달라는 거죠.


삼호 주얼리호 구출과 언론



우선 글에 앞서 삼호 주얼리호의 선원들을 무사히 구출한 것에 대해서 다해인 일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번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청해부대 대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여기까지다.

더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절대 국민의 안전과 안보는 어떠한 정치적 선전도구로서 이용될 수 없으며,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인질구출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국방부 브리핑을 브레이크뉴스로 내보내고 몇일째 청해부대의 용맹함을 치켜세우며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너무 낯뜨겁다. 이번 구조작전 하나로 최강군이 된 기세,
물론 잘된것은 잘됬다고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거슬리는 수가 생기는법. 아무리 청해부대원들이 잘했다 하더라도 얼론에서 필요 이상으로 띄워버리면 오히려 그 감동이 허물어 지는 수가 생기거늘...

하지만 이렇게 언론들이 오버해서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MB정부를 위한 선물
요즘 어떤 좋은 뉴스만 있으면 등장하시는 우리 가카!! 모두 가카의 업적인 풍을 남긴다.
쫌 시원하게 모든 공을 청해부대원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것인가??
외교적 문제에 있어 강경대응의 원칙을 알리기 위해서등??
2. 추락한 군의 위신을 이렇게 회복하려고??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추락한 군의 위신을 다시 세우려?? 또는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모르겠다. 이런것들이 억측이고 삐뚤어진 시각일 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해보자.
1. 과연 지금 언론들의 보도 형태들이 아주 담백하고, 공정한 보도라 보여 지는가?
2. 이러한 물음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욕먹는 것은 정당한가??
추가적으로 몇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
3. 과연 국방부가 출입기자단에게 엠바고를 건 "피랍선원의 안전을 위함" 이 가장 큰 이유였을까? 아니면 명목상의 이유였을까??
(작전상황을 일일이 세세히, 그리고 무기까지 공개하는 이 판국에..) , 다음 또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땐 어떻게 하는가??
혹 실패시 여론을 단속하기 위해, 또는 성공시 여론을 극적으로 이끌기 위해 그런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진실로 피랍 선원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면
  .3-1 협상은 불가했나?
  .3-2 인명 살상이 최소한인 방법은 없었나?
보도 초기 당시에도 인질1명이 경미한 부상외 모두 안전하다며 인질 구출작전 승리의 흥을 한껏 끌어 올렸었다.
하지만 이후 부상자는 선장으로 조준총격을 받았으며 지금도 중태에 빠져 있는것으로 안다. 
정말 선원들의 안전한 송환을 위한 조취였나?? 
이 정부의 언론 이용 스타일을 보면 이런 발찍한 의심들을 해보게 된다.
4. 부산, 미디어, 아시아에 대한 출입제한은 옳은 조취인가??
정부가 나서서 부산일보, 미디어 오늘, 아시아 투데이의 출입기자 제한 조취는 옳은 행동인가?
부산일보는 기자실을 통해 얻은 정보도 아니었다고한다. 또한 미디어오늘과 아시아투데이는 이를 인용하여 기사를 썼다.
하지만 이미 기자실을 통해 정보를 얻은 언론사들은 강경책에 무게를 둔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엠바고 파기 아닌가??
선원들의 안전을 위했다면 피랍 처음부터 보도자제를 요청했어야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강경발언들이 해적들을 더욱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왜 하필 이번 작전에 대해서만 엠바고를 건 것인가?? 그리고 출입 제한을 당하는 언론사들은 외 작전에 불리한 내용들에 대해서만 제제조취가 취해지는가??
5. 위의 문제를 모두 뒤로하고, 그게 최선이었습니까?? 확실해요??
인질 구출작전은 큰 위험을 담보로 한다.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는 일인가??
또 지금껏 협상을 통해 해결될 문제를 , 해적들의 살해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안전을 위한 조취였나?
아니면 우리의 강경한 의지 천명을 위한 조취였나??

생각을 해보자. 과연 지금 승리의 분위기에 취해 오만해 질 것인지?
절치부심으로 더 낳은 방법들을 생각하며 미래를 대비할 것인지.


차명진이 사는 나라의 황제는 누구인가?




글에 담긴것은 무엇인가?
글에는 지식과 정보가 담기기도, 때론 재미와 감동이 담기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글쓴이가 글 쓴 의도와 목적에 맞게 드러 날 수도 또는 감추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것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의 생각과 품성이다.
그 사람의 말과 글 그리고 행동에서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드러난다.


이번 차명진 열사의 개드립 사건을 보면서 그런 말의 힘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아마 아직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고 있을 수 도 있다. 일꾼이요 머슴이요, 서민의 곁에서 생각하겠다는 사람들이 버스비가 얼마네, 최저생계비가 많네, 6300원이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네... 등등의 개소리를 삐약삐약 해대며, "서민의 위함이요"라 외치고 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서민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 나라의 황제는 또한 어떤 사람들인가??

혹시 생계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닌것 아닌가??
생계...백번 양보해서 먹고 자고 입는 '인간'의 최소한의 행동 양식을 생계라 한다.
저기서 말한 인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초중고를 다니며 배우는 사회적 '인간'이 아니라 원시적 동물의 의미에 가까운 '인간'이다. 사실 생활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도저히 이나라에서 최저생계비를 논하며 "생활"이라는 단어를 쓰는것 자체가 어울리지 못한거 같다. 그런걸 백번 양보해서 먹고 자고 입는것에 대해서만 생각했을때, 쌀 두컵 1600원 김치 한보시기 2000원....도저히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정말..정말..최소한의 밥 한공기에 김치 한조각 먹더래도 하루에 3600원, 그런데 이게 말이나 되는 식단인가??
좋아요!! 건강이고 뭐고 그런거 백번양보해서, 따른거 생각 안하고 차명진 열사가 말하는 황제 식단대로 "쌀 800, 쌀국수 970, 미트볼 970, 참치캔 970, 황도 970, 하루 식대 4680원을 제한 1620원으로 자는곳은?? 입는것은?? 전기세는?? 수도세는?? 자녀들 공부는 안시키나?? 그래 , 가족끼리 놀러가는걸 생각한다는 자체가 사치고 범죄지!! 행여나 황제식단으로 몇달을 이어가다 병이나면,,, 행여나 당신들이 바라는 의료민영화가 되면,, 이나라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것인가?

정말 백만번 양보해서, 정말 최소한의 사회적 "인간"이 아닌 동물적 "인간"으로서라도 살아가도록은 해줘야 하지 않는가??

사람은 먹는것 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먹기도 먹어야, 하고 자기도 자야하고, 입기도 입어야 하지요!!(참 인간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 외이렇게 죄스럽고 조심스러워 지는가?? 백번 양보해서 지금의 삭막한 현실에서만 논하도록 하자...)

최저 생계비를 책정한 위정자들의 잘못인지?
최저 생계비를 측정한 위정자들은 맞는데, 그에 맞지 않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잘못인지..
아직 알 수는 없으나,

친서민이니, 국민의 일꾼이니 하는 개드립써비쓰 같은건 집어치우고,
당장 저놈의 死대강부터 어떻게 좀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