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mic for VOICE'에 해당되는 글 74건

  1. No Abe 1
  2.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경계
  3. 신고리 1호기 발전 정지
  4. 김성주 적십자 낙하산으로 본 새누리계열의 권력 유지 방식
  5. The giver : 기억 전달자 (계속)
  6.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7. 자유의 의미를 아는가??
  8. 세월호 특별법 이렇게 처리하면 깔끔하다.
  9. [언론 해설서]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 수사권 주장과 생떼 사이
  10. [언론 해설서] 독자들이 일으키는 흔한 착시 현상 "전지적 시점 착시현상"
  11. 노무현의 신격화??
  12. 세월호 유가족이 분노하는 이유
  13. 이성적인 것과 냉정한것 구분되어야
  14. 결국...
  15. 대통령의 자리는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자리인가??

No Abe



극일(克日)에 동참하기 위해 이렇게 몇개 올려 본다.

사실 모든 일본 국민과 일본의 모든것들을 비판 할 필요는 없다.

 

군국주의 야욕을 꿈꾸는 일본의 우익 세력에 대해서 정밀하게 비판하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반성 없는 일본 No!!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아베 No!!

 

#No_Abe

 

#No_History_Distortion

#No_Takeshima #Yes_Dokdo

#No_Sea_Of_Japan

 

#No_War

#No_The_Rising_Sun_Flag

 

#No_Dumping_Radioactive_Waste_To_Ocean

No Abe No 아베 No Japan (Center)
No Abe No 아베 No Japan (Right)

 

No Abe No 아베 No Japan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경계



지금 주변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의 고마움,

공기의 고마움,

부모님의 고마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을..


그러하듯 

또한 당연한 것들에 대해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지금 자유롭게 마시는 물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들이마시고있는 공기가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또 언제까지 내 존재가 어제와 같이 늘 당연함으로 남을지...


기우(杞憂)가 아닌 당연한 것들에 대해 적절한 긴장감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언제까지 영원할지

뉴스는 내게 언제나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
정치인들만 정치를 한다는 생각
정치면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대형마트의 확장은 소비자들이 값싸고 편안한 쇼핑을 돕는다는 생각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거라는 생각
나라가 잘사는게 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생각
반대로 나라가 못살면 국민이 못산다는 생각
자유시장경제는 절대 선이고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라는 생각
그런 경제체제로 나타난 결과로 자유시장경제가 승이고 공산주의는 패라는 생각
이런 이분법적 생각이 모든 본질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

뒤틀어 보아야 한다.
뉴스를 본다는 것은 정보의 습득이라 생산적 활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집필자 또는 편집자에 의해 생산되고 
독자와 시청자는 그러한 컨텐츠를 접하므로서 소비하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
절대적인 객관은 있을 수 없지만, 그에 따른 균형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공인들은 정치적 표명을 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중립적 처사다라는 말에도 오류가 있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정치적이지 않는가? 오히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정치가 아닌가??
때론 인간으로서의 당위성이 정치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지극히 정치적 이약기가 논의를 피하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왜 보편적 복지, 일반적 복지라는 말 대신에 무상교육, 무상 보육, 공짜를 뜻하는 무상이라는 말들이 이 앞에 붙을까??
그러고 아이들 밥먹이자고 하는것도 정치라고 한다.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정치인들 정제계 권력자들이 허투로 쓰는 돈을 줄여서 
경제적 어려움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만큼은 배굶기지 말자는 건데...
그리고 이는 곧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해결되어 국민이 되돌려 받는 것인데...

무상이라는 말로 국가가 백성에게 주는 시혜(施惠)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밥준다고 하면 정치적이라 한다.
그래서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
그렇다면 권력자와 그들의 조력에 힘쓰는 세력들을 위한 예산의 배정에 있어 그들이 감내해야할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정론으로 몰고 가지 말라 하는데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포함 되어 있지 않은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양적 중립이 필요한다.
무 자르듯 정답이 정해진것이 아니다.
그래서 또 어거지 논리로 사람을 혼란스럽게도 한다.
그러나 분명 그런 비판이 두려워 해야할 이야기를 참지는 말자.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니라 옳은 길을 찾기 위하 논쟁은 하자
그리고 그러한 싸움을 위한 일인지 일이 잘되어 가기를 바라는 일인지는 
한발 물러서서 한번 생각해 보자.
토론을 하자!!

대형마트가 늘어나면서 쇼핑하는 소비자의 편의는 증대되나, 그로 인한 골목상권은 죽어간다. 소비자를 잃어 간다.
대형마트는 이익의 이미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생존과 거대 자본의 초과 이익이 교환되는 실정에 이른것이다.
소비자를 쥐어짜는 국내 기업과 소비분위기
결국 기업은 잠재적 소비시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런 기업들이 늘어나면 또 결국 기업들간 서로의 피를 빨아 먹는 상황에까지 가는 것이다. 지금이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완벽한 선과 승으로 공산주의는 완벽한 악과 패로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이야기 되고 있다.
이념이 무서운 것은 이런 단어로 거기에 넓게 걸쳐진 의미들과 본질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체제의 문제는 극히 일부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욕구, 경계와 감시의 문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권력자의 욕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약하다. 그렇기에 쉽게 도탄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 자유주의는 안녕한가??
마찬가지다
최대 권력자, 권력 집단, 권력 계층이 비판이나 경계 감시받지 않고 욕구를 무한히 드러내게 되면 그만큼 사회는 썩어 빠지고 병들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새누리가 나쁘고 새정치가 깨끗하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다 다 똑같은 이익 집단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의 역기능에 무관심으로 일갈하고, 무관심이 그들의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면,
곧 그 폐단의 축복은 국민들이 질 몫이요 짐이다.
그들의 순기능은 순기능끼리, 역기능은 여기능끼리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한다면 싸움은 파국으로 밖에 치달을 수 없다.

또한 독주를 경계해야 한다.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것은 그사람의 자질이나 능력 도덕성, 정책과는 상관없이 든든한 뒷배가 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분명히 퇴색하게 되어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전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
누군가에게 적용했던 기준을 ,누군가에게는 적용하지 않는지,
비슷한 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쪽의 편에서서 치우쳐 듣지 말고, 양쪽을 다 한번 비교해 보자.
분명 서로의 논리적 모순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떡밥에 물리지 말고,
우리가 갈 길을 가자 
국민들이여!!




신고리 1호기 발전 정지



신뢰가 쌓이지 않으니까 늘 불안하다

올들어서만 벌써 몇번째인가??


목숨은 돈이 아니라서
세월호 같은 사고가 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것인가??


도대첵 국민의 건강과 안녕의 가치는 
위정자들에게 어마나 된단 말인가??


신고리 발전 정지 소식을 들을때 마다

조마조마 하다.


국가간의 조롱과 자존심 싸움이 안보가 되어버린 이상한 나라...


국민의 안전과 안녕이 진정한 안보인 나라이고 싶다.



김성주 적십자 낙하산으로 본 새누리계열의 권력 유지 방식



중구난방 (衆口難防) , 성동격서 (聲東擊西)

여기서 빵 저기서 빵~

이러렇게 인사문제 사건사고 여기저기서 빵빵 터트리면서 이슈를 흐트러 트리고

이목이 다른데로 쏠린 틈을 타서 결국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다 이루어 낸다.


여기서 또 보온 안상수께서는 계란에 전치 2주라 하신다.........






The giver : 기억 전달자 (계속)



깨알 스포 하나!!

이것은 SF의 탈을 쓴 성인용 동화!!




뒷맛이 있는 영화다.

광고와 포스터는 볼거리 많은 SF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선택을 했다.


하지만 초반 배경이 되는 미래의 커뮤니티와 use the precise language로서 '언어 순화' 뒤에 가려진 통제를 발견하는 순간 단순한 오락물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극적 장치는 '조지 오웰의 1984' 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짐케리 주연의 트루먼쇼를 연상하게 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긴호흡과 함께 생각이 많았던 독자라면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가 될것이다.



<잿더미의 무채색에서 시작>

From the ashes of The Ruin,

the Communities were built.


Protected by the boundary


All memories of the past were erased.


use the precise language

wear your assigned clothing

take your morning medication

obey the curfew

never lie


영화는 흑백으로 그려진 미래의 한 지역에서 시작한다.

이미 파멸을 겪은 인류는 모든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정확한 언어'(여기서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들이 사라진듯) 사용

할당된 옷 입기

매일 아침 약물 투여

통금시간 준수

거짓말 하지 않기를 따른다.


<부정적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Jonas, your turn for feelings.

well, I guess sorry of terrified.

-The precision of language.

I mean anxious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통제되어 쓰지 않는다.

걱정이라는 단어로 통일해서 쓴다.


색깔 ,인종, 종교 모두 같게 만들었다.

달랐다면 시기하고 화내고 억울해 하고 증오에 사로 잡힐 수 있으니.


꿈이라는 단어가 없고, 음악이라는 단어도 없고, 춤이라는 단어도 없다.


memories are not the just past, they determine our future, you can change the things. you can make the things better



모든 언어가 통제 되어 있다.

통제되었기에,

살인, 전쟁, 증오, 시기, 차별이 없다.

얼마나 완벽한 세상인가?? 그래서 대론 모든것이 통제된 세상에 대한 동경을 한다.



그심정은 이해한다. 누구나 다 한번쯤 해보았을 법한 상상.

모든것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모든 시나리오가 짜져있고, 사건사고가 없는 이상을.

어떻게 보면 가장 깔끔하고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독재'를 찬양하는 어린양들에게 그저 모든것이 하얗고 깨끗하게만 보이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장점들로만 작동하는 세상이기에 완전무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독재나 모든것이 통제된 잘짜여진 시스템으로만 움직이는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통제 혹은 독재의 주체가 완전무결해야만 한다는 전제다.

고통과 증오가 없는 사회, 유토피아적 사회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다양한 지식과 정보, 가치관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의 일방통행은 결국 

악의 없는 통제자라 할지라도, 무지의 불완전한 통제자에 의해 실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이런 명확하고 확실해 보이는 방법들도

선택권이 박탈된 제한구역 내에서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인은 양심의 문제를 떠나게 된다.

(스포일 수 있기에, 영화 보신 분들만 이해 할듯하네요)

바꿔 말해 때론 악이 통제자에 의해 통제된 제한구역 내에서 양심의 문제를 떠나 그냥 일상이 되어 버릴수도 있다.




특히 파피용에서 느꼈던 인간사의 발전과, 헤겔의 그것에 대한 숙제는 영화를 본 지금도 계속 남아 있다.

피라밋처럼 정반합으로 이루어 올라가는, 혹은 발전해 가는 선형적 인간사를 생각할 것인지

정과 반 합이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반복 될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필자도 정반합에 대해 습자지 처럼 얇은 정의만 사전을 참고해 알고 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했는가? 혹시나 필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생각들을 공유해 보고, 또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을 모아 보고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전자의 합은, 인간은 언제나 발전의 곡선을 그리며, 언젠가는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이고, 그렇기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합을 잘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논쟁이 있을 것이고,

폐곡선상의 합은 디스토피아로 갈것인가? 유토피아로 갈것인가의 절대적 답이 정해진 일방향의 흐름이 아닌, 

언젠가는 또 반복되기에, 디스토피아 유토피아가 무의미한, 그저 지금 세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기에 물 흐르듯 몸을 맡겨 흘러 간다는 의미에서 본 변증법이다.


이미 눈치를 챈 독자도 있을 것이다.

헤겔의 그것은 

칼로 무자르듯 하나를 나누어 놓고 

갈라진 나머지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정과 반의 적절한 조화, 융합이 결국 합인 것인데,


우리는 하나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고 정과 반 둘중 하나를 합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우리 사회는 그런 극단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통제와 개방

제한과 자유

평등과 차이

분배와 성장

경영자와 노동자

하물며 선과 악까지


이 모든것들이 서로 양극에 서있어 방향이 다른듯 보여도

두동강나 합쳐질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무가 아닌

정과 반의 대립속 하나로 균형있게 융합되어야 할 단어들이 아닐까??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새누리와 박근혜댓통령은 야당시절 반정부투쟁하던때 논리의 반만이라도 하십시오!!


우리 같이 외쳐요!!


어떠한 연유로든 낚시성 쟁점에 논점이 분산되고, 문제의 본질이 희미해져 결국 흐지부지 되는 이런 악순환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과거에 당신들이 내걸었던 논리를 반만이라도 실천하십시오!!!




따지고 보면 진보가 가장 화난 이유는 바로 수구(진정한 나라를 위한 보수가 아닌 권력을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세력)가 


언론의 실세를 등에 업고 말로만 혹세무민하고 감언이설하고 뒤돌아서 호박씨 까고 토사구팽하니 


적어도 자신들이 정치적 술수로 지난 진보정권에서 재미를 봤으면


지금 새정치가 하는 정치적 장치들은 조금이라도 그 방법론으로 인정을 해 줘야 할것 아닙니까??


지금 모든 법과 힘 정당성은 자기들 위주로 해석해 놓고, 그렇게 여론을 조성해 놓고, 


일말의 양보도 없이 새정치와 국민들에게 '입닥치고 따라와' 라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면 진정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 당신들은 존재하는 것인가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일상적인 방법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기에 점점 더 효과적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하나의 슬로건으로 통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바캬!!! 발론반!!







자유의 의미를 아는가??



자유란 자신의 자유가 상대가 가진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자유대학생연합이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피자와 김밥등을 시켜먹으며 폭식투쟁을 한다고 한다.

물론 표현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유'라는 것의 의미를 알까??

자유란 그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 질 수 있을때 자유다.

꼴리는 대로 하고싶은 대로 무책임하게 저지르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또한 자유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이런류의 자유들은 자유가 아닌 방임이며 (뭐 좋은 표현이 없을까??) 그저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동물과 다를바 없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이성적 제한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그 이성은 인본을 향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일베와 자유대학생 연합이 광하문으로 향해 유족을 조롱하고,

단식 농성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음식 냄새 풍기며 먹거리 잔치를 열겠다는 것은,

무슨동기에서 이며, 무엇이 그들을 광화문 유가족 앞으로 향하게 했을까??


그들은 과연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나 알까??

무엇을 원하는지 알까??







세월호 특별법 이렇게 처리하면 깔끔하다.



긴말 필요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 당은


자신들이 야당시절, 참여정부를 공격했던 논리의 반만이라도 지켜라!!


지금의 새정치가 보이는 정치력은 과거 한나라당이 펼쳤던 정치술수보다 비교도 안될만큼 힘없다.


지금 새정치의 모든 행동들이 생떼면서 국정 발목잡기라면, 그때의 모든 행동들이 악의적이고 국정운영에 차질을 줄 목적이었음을 인정하라!!


자신들이 안전한 한국 만들겠다던 약속이 그저 입에발린 공약이었음을 인정하라!!


[언론 해설서]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 수사권 주장과 생떼 사이



과하다.


이젠 국민도 세월호 정국에 지쳐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 세월호 정국의 어떤 지리멸렬한 싸움에 지쳐있는지를.


일단 잠잠해지길 기다리면 된다는, 권력을 가지고 힘으로, 불통으로 무조건 밀어 붙이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지금 통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이 정국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지금 사건을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국정 운여을 하는데 발목잡기 쯤으로 생각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모든 반대 의견은 정쟁일뿐, 어느하나 진지하게 국가가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해 본적이 없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반대의 의견을 국가전복이니, 반국가 세력이니 만들어 국민 모두가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그저 가십거리의 싸움으로만 만들고, 이슈를 자극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이러한 극한의 대립, 그 저변에는 그때그때 바뀌는 논리들, 자신이 야당시절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던 형태를 지금은 반국가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반의 국민을 적, 또는 암적인 존재, 또는 악인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바른길을 가자고 주장하고 논쟁하자는건데, 그러한 생각과 노력과 별개로, 자신들이 적폐 또는 악인으로 몰리다 보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는것이다. 적어도 이전까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표현을 했지 국가전복, 빨갱이, 종북, 적폐로 표현하며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이재오 의원이 얼마전 언급한 한비자의 충효편에 나오는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되새겨 볼만 하다. 정치란 무릇 평범한 자를 다스리기에 비범한 사람들인 위정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고려해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평범한 사람에 견주어 정치하는 사람들이 비범한 인물에 견주는 것이 지금 형국으로서 옳은가의 문제이다. 평범과 비범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나누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치에 있어 범인(凡人) 비범인(非凡人)을 나누는 기준에 있어 '자신을 삼갈줄 아느냐'를 그 기준으로 잡고 싶다.


한비자 충효편에 나오는 저 말은 대중의 위험성을 이야기 한것이 아닐까?? 군중의 무서움이란, 국가의 존재 이유는 백성(국민)이고, 그들은 나랏일(정치)에 정통치 못하니 판단의 기준이 잘 서 있지 않고, 그러니 쉬이 흔들리기에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국민이 뭘 몰라서 무식하다, 국민이 어리석은 존재라서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함을 통해 국가 기반을 떠받드는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힘들고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업보다 높게만 생각을 했지, '전문 분야와 비전문 분야'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물론 업무의 절대적인 어려움과 노력, 고통이 동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정자들을 높이 봐주고 우러러 보는것일 뿐. 국민이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것이다. 그렇기에 위정자들의 말에 쉬이 휘둘리는 것이다.


또한 결국 나라를 이끄는 힘을 부여 받은 사람들도 위정자들이다. 그들이 발휘하는 힘은 일개 개인이 발휘하는 힘보다 크기에 그 힘을 잘 삼가며 써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정자들은 자신을 삼갈 줄 아고 국민은 자신을 삼가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물론 집단적 대표 이름으로 따진다면 이런 욕하기에 앞서 자신을 무서울 정도로 삼가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위정자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탐욕이 큰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거나 바르지 못한 곳에 쓰기에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을 삼가려는 노력은 커녕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 또한 많은 것이다. 오히려 모든것에 열심히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론 저 위 높은 자리에 계시어 나랏일 하시는 분보다, 더 자신을 삼가고 자신의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다.


[[항상 집단의 명명( 예를 들어, 정치인, 언론인, 검찰, 경찰, 국민, 공무원)과 그에 대한 평가는 조심하고 그 세부 사항들을 별개로 볼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이라 해서 그들이 탐욕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라의 앞길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도 많을것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법과 원칙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검사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이 집단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다. 해서 필자가 비판하는 집단은 항상 '그 중 일부의~'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린다.  ]]


이러다 보니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정확히 지금 형국에 적용 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이재오 의원이 언급하신 위의 고사에 대한 당신의 고뇌와 생각을 추호도 비판하거나 평가 절하 할 수는 없다. 현재 문제에 대해서 소신있고 또한 큰 생각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삼가고, 비범한 인물이고, 또한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남들의 생각에 쉬이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무지몽매한 백성을 혼란스럽게 한는 것도 그를 이용해 정치적 힘을 얻으려 한 위정자들이었다. 자신을 삼가지 못해 대중을 무서운 존재로 만든것 또한 위정자들이다.


이 주장의 한편에는 일부 '깊은 성찰과 생각이나 철학 없이 정치를 하나의 편가르기와 누가 이기느랴를 가르는 스포츠 쯤으로 생각하는' 국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위의 이재오 의원께서 언급한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가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 새정치 가를 것 없이 모두가 잘못되었다. 새누리 역시 철저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국정운영에 빚을 차질만을 생각한채 불통한 것이, 또한 그 죄를 오롯이 새정치에게 떠넘긴 것이 문제고, 새정치 역시 세월호 사건을 진심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계산기만 두드린 것이 잘못되었다. [ 물론 새누리, 새정치 내에서 진심으로 문제에 접근했던 사람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폄훼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과 수사권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현실적으로 불가능 해 보이며, 유가족 측이 너무 강경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지불식간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필자가 유가족의 입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련의 행간을 읽으면, 이런 인재로 다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와 원인규명, 그리고 그런 기념비적(추념비적이라 해야 옳은 말일까??) 사건의 해결로 망자를 위로하고 그들을 지키는것. 그들이 원하는 궁극이 아닐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소권과, 수사권인가??

사실 지금껏 특검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을 했던 적인 얼마나 있었던가?? 이슈의 활성화에는 기여를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진채 적폐를 뿌리뽑았던게 얼마나 되는가??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의 특검은 여야의 정치적 과정에 불과했기에 정치권의 특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가 추진중인 가족의 3배수 추천 특검 또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언론 지형으로 정부와 여당이 비협조적으로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다시말하면 현재의 제도와 법 아래에서는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가능 해 보이는 사안을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며 생떼를 부리는가?'라는 슬로건에 메달리지 말고,

왜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 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현 법과 제도의 한계를 생각하자.



끝으로 이재오 의원이 언급한 고사로 끝맺으려 한다.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 道也者 道常者也(도야자 도상자)

정치는 평범한 이를 다스리는 것이고,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







[언론 해설서] 독자들이 일으키는 흔한 착시 현상 "전지적 시점 착시현상"



착시란 무엇인가??

인터넷 사전에는 착시 ( 錯視 ) : 시각적인 착각 현상.

이라 나온다.

즉 우리가 보는것과 객관적 현상 또는 본질과의 차이가 생긱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누구나 다 주관적 관점에서 현상과 본질을 객관화 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보는 이상 그 어떤것도 절대적 객관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상을 판단함에 있어, 불완전성을 염두해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없는것이다.


이는 조금 더 확장되어 그 누구도 우리가 보는 현상이 본질 그자체에 닿아있다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만큼 '단정형'을 쓰기 위해서는 우리는 경계하고 또 삼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SNS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고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가 나아가는 길에 있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이기도 하다

하나 하나의 목소리가 모여 여론이 되고,여론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만약 이러한 목소리들이 생산적이지 못하고 소모적이면 엉뚱한 방향으로 사회를 몰고 가기도 한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의견이 맞서고, 자연스럽게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면, 그 과정에서 건전한 사회적 논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조직적인 움직이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여론에 개입을 하면, 금새 맑았던 여론의 형성 과정은 혼탁해 지고, 

생산적인 논의는 사라지고, 혼탁한 흑색선전, 색깔칠들만 난무하다.

이미 우리사회의 여론은 감정적이고 극에 다아 있다.

( 이 또한 비약일 수 있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지만, 분명 감정적인 대립이 심해져 있는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 가능한 수준의 현상이니까..)

144자의 짧은 글안에 모든것을 포함 할리 만무하고, 단정적 한마디들만 난무한다.

길어진 글들은 읽기 싫고, 자신이 읽고 싶은 내용들만 받아들인다.

논리적이고,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근원은 이미 글쓴이가 판단에 의해 쓰여진 글들이 퍼날라 지고 사실과 팩트, 논리로 둔갑해 있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상황을,  우리가 설명 가능한 시간동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한편의 긴 글에서도 현상의 본질과 진실을 제대로 담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짧은 한마디에 단정지어 버린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단정은 

"내가 모든 사실을 다 꿰뚫고 있노라"

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나 영화를 많이 접해 왔다.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는 글쓴이 또는 제작자가 의도한 영역 내에서 모든것을 제시해 주기때문에 주요 사건을 따라 감에 있어, 전지적 위치에 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적어도 포털이나 인터넷 기사라는 틀에서 우리는...

기사의 생산자가 만들어낸 링 위에서, 우리는 키보드로 싸우고 있는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대한민국 모든 영역을 내다두르고, 모든 이들의 관계를 긴밀히 꿰뚫고, '신'만이 아는 모든 진실을 자신들이 꿰뚫는 양, 

모든것을 제단하고 판단하고 글로써 풀어나간다.

글로써 풀어나간다면 다행이다. 

어느정도 그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반박이 있을 수 있고, 거기서 또 논의가 있을 수 있으니.

그러나 단순히 전 후 흐름없이, 충분히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는, 또는 영화의 중요한 trigger 인 마냥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고 간다면,

또 그러한 단서를 자신의 전지적 작가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불쌍한 이들은 어쩔 것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논의가 아닌, 모두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에서 또 자신은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것을 내다 본다 여기며 썰을 풀어나갈 것 아닌가??


본 필자가 말하고 싶은것은 한가지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그것이 절대적 진리냐 또는 객관이냐는 무의미한 문제이다.


다만 자신의 불완전성을 의식적으로 되내이며, 

논의화 합의를 거쳐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넌 틀렸고, 내가 맞다'는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난 이렇게 생각하고, 넌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야기 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들 인턴넷 환경이 양날의 칼이다 이야기를 한다.

시공간을 초원하는 광활한 pool에서 논의를 거칠 수 있는것은 장점이요

괴물과 같은 파급력을 지녔기에 잘못 이용하면 단점인 것이다.

이것을 장점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자 개인이 모두의 말전과 밝은 내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표현이 상투적인가???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이러한 상투적 표현 이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껏 손발이 오그라 든다 피했던 기본적 상식과, 윤리 도덕 교과서적 구절들을 다시금 꺼내야 할 때이다.

어떠한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선동하더라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러한 선동은 발 붙일 곳이 없을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란 1.일반론적 단어이며, 2. 스스로를 '이성적이다 합리적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실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이 글을 쓰고도 두려운 것은 형식적 틀에 얽메여 

필자 당신은 단정적이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분명히 밝혀 정리한다.


이글의 요약은

1. 우리 모두 전지적일 수 없다. 고로 우리의 의견은 불완전한 정보에 근거한 판단이기에 불완전 하다.

2. 목적은 싸움이 아닌 합(合)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다. 내생각은 이렇고 당신생각은 이런데 이건 어떻까요? 라는 방식의 토론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의 신격화??



혹자는 지금 이 사고와 관련되어 고 노무현대통령을 언급하는것은 그를 신격화 하는 것이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당시 위기관리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훈련도 정기적으로 했고.

그때 입에 거품물고 정치적으로 혼란을 부추기던 정치인들이, 끝내 그 시스템을 지워버린 이유로

이러한 재난이 다시 발생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런데 주위에서는 이를 노무현의 신격화라 이야기 한다.


단지 그때의 상황만 비교를 하는것이 그들은 신격화로 느껴졌다면...

그렇게 무능하다 욕먹었던 참여정부가 신과 같은 국정운영을 했다는 말인가??


오히려 정부의 수장으로서 책임 없이 구름위 심판자 역할을 하는 대통령을 그의 지지자들은 신격화 하고 있는것은 아닌까??

말로서 모든 국정을 이끌어 가는 그녀를 옹호하는 것이 혹 신격화는 아닐까??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분노하는 이유



세월호 유가족이 분노하는 단적인 이유를 잘 나타내는 두 기사가 있다.


지금은 이 기사가 어디갔는지 찾을 수 없는데,


사진 출처: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2947

위의 사이트와 관련된 내용은 필자의 생각과 무관합니다. 사진만 따온것입니다.


왜 계속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문제가 커지는가??

이상호 기자의 연합뉴스 기자에 대한 욕설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연합 뉴스는,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 이라는 제목으로 잠수부 700여명 경비정 100여척 등 대단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실제 구조 현장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력들이 구조에 참여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연합뉴스 기사가 틀린말은 아니다.

'투입'이라는 단어때문이다.

가용 인원이 구조활동에 참여하고 대기하는것도 투입니다. 작전에 참여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구조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연합뉴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현재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달하려 했던것이다.


이번 사건 또한 그렇다. 조작 논란의 발단은 위의 사진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앞서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는 것인데,

조문이 실제 애통하고 슾픔에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갔는가?

아니면 형식적으로 갔는가 하는 진정성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세월호 관련 사과와 관련된 내용을 국무회의에서 언급한다.

여기서도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분명 이는 사과가 아니다. 

국민을 향한, 유가족을 향한 직접적인 사과가 아니라 간접적 사과이기에,

이후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하면 '사과가 아니었다' 해도 상관없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적절한 사과가 되려면 기자들을 앞에 불러 놓고 형식에 따라 진행하는 '대국민 사과'가 어떻게 보면 진짜 정부로서, 대통령으로서 드리는 사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짜 사과가 아닌 국무회의에서 사과의 표명을

언론은 '대국민 사과'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적절한 액션만 취하면 ,

언론은 그에 맞게 기사를 쓰는 것이다.



이번 조작 논란도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작은 아니다.

왜곡인 것이다.

적절한 액션만 취하면 언론에서는 '분향과 함께 위로를 표했다'.가 되는 것이다.

즉 정부와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이 심어진다.

더욱이 당시 같이 올라오던 기사는 ' 대통령의 조화가 밖으로 쫓겨났다'이다

유가족이 무례했다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기사이다.


이 두기사가 나란히 올라오면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바뀔까???


정부가 주도한 것도 아니다.

언론이 주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암묵적 사인이 있는 것이다.

이런 액션을 취하면 이렇게 기사를 쓰고,

그것이 여론의 왜곡이다. 

언론의 왜곡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여론에서 조작설이 연합뉴스는 반박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제 올라왔던 저 사진과 관련된 기사를 찾기 힘들어 졌다.


<연합뉴스 4월 30일자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887756&isYeonhapFlash=Y




밑줄 친 부분을 읽은 여러분은 당시 상황을 어떻게 그리는가??

(필자는 대통령이 조문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대통령을 붙잡고 이야기를 꺼내놓는거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럼 당시 상황을 한번 보자.


출처: http://www.nocutnews.co.kr/news/4016994


당시 할머니를 안내하던 사람은 경호원이 아닌 장례지도사라 한다.

동영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다시 글을 읽어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은 다를뿐'

기자가 기술한 내용이 또 틀린것도 아니다.

 

결국 기자는 기사가 어떻게 보이게 쓰는가? 또한 분명히 고려한다.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도하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특히 두개의 연관성을 가지게 하는 기사를 동시간, 또는 시간순으로 올리면 두 사건이 개연성을 가지는 것이다. 설령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으로.

이런것을 언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판단은 독자 여러분이 하시길 바란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왜 이렇게 유족이 분노하는지 알 수없다.


사고 여흘이 즘 지난 25일 사고 상황이다. 

범정부 사고대책위원회가 사고자 가족들을 위한 '책임 실명제'를 실시했다.


<뉴스타파 : 엉터리 책임 실명제 유가족 두번 울린다.>

http://newstapa.tistory.com/

말하고 싶은 것은 두가지다.

지금의 이런 논란들이 결국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지금 상황은 몸에 욕창이 생겨 썩어 문들어 져 가는데,

삐까번쩍한 밴드로 상처를 덮어서 '나 지금 열심히 치료하고 있어요~' 하는거랑 다름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세치혀로 모든 것을 하던 정치인은 가능했을지라도,

대통령은 그러해서는 안된다.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해야지

자기 자신에 있는 권위주의와 불통의 적폐(積弊)를 도려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국민들 눈속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

대통령께서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면

치료나 개선책 또한 엉뚱한 것이 나온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책임을 지고 간다면 국민들은 힘을 보텔것이고,

책임을 묻고 지나간다면 국민들은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점유율 70&를 넘나드는 네이버

또 그곳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이 위치한 연합뉴스

 

통신사라면 뉴스 기사(컨텐츠)를 제공하는 기관인데...

지금의 보도 형태로 당신들은 통신사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국민의 세금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 당신들이

양심과 사명을 가지고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이성적인 것과 냉정한것 구분되어야



몇일전 뉴스기사를 읽다가

'오~ 머니투데이가 왠일로??'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뉴스를 읽었다.

경제일간지에서 이런 글이, 그것도 주류 언론이 다루고 있지 않는 '세월호 사건' 이면의 '사회 모습을' 보여줬기에 대단하다는 생각 했다.

그 내용을 다뤄 보고자 다시 기사를 찾는데 찾을 수 없다.

알고보니 기사를 내린것...

왜 기사가 내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충분히 생각해 볼 문제인것 같다.

 

그 기사르 찾던중 좋은 글이 함께 있어 한꺼번에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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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안 슬픈데 이상해?"..'공감 교육' 없는 사회의 비극


# A씨(34)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힘내, 조금만 더 살아줘'와 같은 메시지를 보면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을 한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도 무슨 소용인가 싶다. 희생자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세상엔 이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까지 든다. A씨는 주변사람들에 비해 지극히 덤덤하고 차가운 자신의 모습에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되묻게 됐다.




# B씨(27)는 페이스북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비이성적"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부 친구들은 관계를 끊으며 절교를 선언했다. "고통받고 있는 희생자들을 모욕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B씨는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단적 감정을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B씨는 여전히 '누군가는 정신차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성적인 것과 냉정한 것은 구분돼야"

세월호 참사로 온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잠시 웃는 것도 죄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희생자와 그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가 많다. 경기도 안산에 마련된 임시합동분향소에는 사흘만에 추모객 4만여명이 다녀갔다, 수학여행을 떠났다 희생된 고등학생들 영정 앞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 어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집단의 감정을 모두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이 '몰인정'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안타깝긴 하지만 내 일처럼 슬프진 않다"는 말부터 "희생자 가족들의 감정적 대응이 과하다"는 시선까지 모두 '다양한 의견'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이성적인 것'과 '냉정한 것'은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지만 '냉정'에는 공감이 배제돼 있다는 뜻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에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하는 것은 이성적인 게 아니라 냉정한 것"이라며 "냉정한 이야기를 이성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이성적'인 자세는 상대방의 아픔에는 공감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이와 달리 타인의 아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몰인정한 것'일 수 있다.

전 교수는 "부정적인 사건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동시에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도 고민한다면 차가운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감교육이 사라진 사회"

'공감'이란 일반적으로 '함께 느끼는 것'을 뜻한다. 어떤 대상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감정을 느낄 때 발생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목격하는 순간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공감이다.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자각'하거나 그의 정서적 경험을 '이해하는 기술'로 풀이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공감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18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한국)국민이 미개하다"고 써 공분을 샀다. 천안함 사건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희생장병의 유족을 두고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는 실언을 해 홍역을 치렀다.

강선덕 심리치료사는 "공감능력 상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만든 병폐"라며 "타인과 온전히 감정을 나눌 수 없어 마음이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공감능력장애는 자기중심적 공감방법을 사용해 부정적이고 자극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도덕교육'을 하고 있지만 도덕적 판단과 행위 사이 간극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도덕지수와 청렴지수는 청소년 시기부터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공감능력의 결여'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침투한 입시위주의 경쟁 앞에 '공감'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됐다. 부모들은 남을 밟고 일어서라는 이기심을 자녀의 마음에 심는다. 아이들은 협동이나 배려보다는 '내것 챙기기'에 익숙해 진다. 이는 남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그저 '무능'으로 치부해 버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교육이나 능력이 우리사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지 부모와 자녀 모두 되돌아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특히 어린 학생들부터 비뚤어진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지를 배워야 한다"며 "가정과 학교에서의 공감교육은 이제 필수가 됐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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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6051804950 

<머니투데이 4월 26일 오전 기사 , 이후 삭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06590

<적자 생존에 대한 오해>


결국...



결국..

선장에서 청해진해운으로, 청해진 해운에서 해운조합,,,그런데 해운조합은 다시 조용히 지고, 회장과 그 일가로..

언론의 시선을 옮기는 구나..

처음 까지만 해도 사고 수습을 위해서 빠른 수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제 컨트롤 타워 발언 이후에 알았다.

책임에서 발 빼려는 수순....

국민적 공분을 선장과 그 회사로 옮기고...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 아니라

정권의 유지이고,,,지지율이고.....

 

박근혜 정부는 책임 없는...

심판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그들에게 대통령이란 한국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수장이 아니라.....

심판자였구나...


대통령의 자리는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자리인가??



대통령의 자리는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자리인가??


이제 공부해야 되는데, 화가 나서 또 쓰네요...





<연합뉴스 . 14.04. 23. 靑, "청와대 국가 안보실,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3091606435


여기서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서 묻고 싶다.

자신의 배에 탑승한 승객을 구조해야 할 의무를 져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 살인이나 다름 없는 행위라 여론에 편승해 말씀하셔 놓고는,

정작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청와대가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을 한다면....

정말 답이 안나온다.


주구장창 이야기 하는 바지만, 구조가 어려운것은 안다. 상황이 유례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그런 유례 없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미리 대비하고 강구하는 것이다.

지적하고 싶은 바는 진정성이다.

이름만 행정안전부에서 안전 행정부로 바꾸면 다인가??

연세대의 한 교수님도 그러던데 1차관이 행정차관이고 2차관이 안전차관이고...

사실 1차관 2차관이 본질은 아닐것이다.

국민의 안전에 대해 얼마나 실질적이고 그에 대한 고민을 했는가? 그 진정성이 우선이 아닐까?


좋다..

원래 현장에 대한 확실한 지휘가 그곳 사정에 밝은 부서에 맡겨야 한다면 거기까지도 인정!!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존재라 한다면 인정!!


그렇다고 국가 통수권자, 즉 군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행정부의 수장이기도 한 대통령, 그를 대표하는 청와대에서 책임을 피하려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면 첫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뜬 이후,





<데일리안 14.04.16, 박 대통령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게 하라">

http://www.dailian.co.kr/news/view/433186/?sc=naver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하라"

"해경특공대도 투입해서 여객선의 객실과 엔진실까지 철저하게 확인해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라고 지시 하신다.


( 필자 또한 안다, 현장을 알지 못하지만, 이런 현장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 어려운 상황이란 것을. 현장 요원들이 얼마나 힘든지를..말처럼 되지 않는것도, 안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이 있다. 그러한 논리와 잣대를 들이 댄것은, 안타깝게도 지금 국정을 운영하고 게신분들, 지난 정권에서 운영하고 계셨던 분들이다. 

참여정부가 무능하다 이야기 했던 분들이다. 객관적이려 해도 분통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무현이 무능하다 했으면 적어도 그보다는 잘해야 할 것 아닌가??

실제 이루어 놓은 결과는 따져보지도 않고 조중동 언론을 통해 무능하다 여론몰이 하던 그대들이 아닌가...

그러면 최소한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할것 아닌가...... )



책임도 없는 분이 지시를 하신것인가?? 격려나 주문이 아닌 지시말이다. 명령.!!

대통령으로서 명령을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이 내포되어 있는것 아닌가??


'국민이 미개하다'고 했는가?

'대통령이 모든것을 다해주고 국가가 다해주길 바라냐고 물어보았는가??'


사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대통령이 모든것을 다 할 수 있고, 대통령이 모든것을 바꿀 수 있고,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만든것은

아이러니 하지만 지금의 주류 세력이다. 정작 그렇게 국민은 미개하게 만든것이 누구인가??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

'오늘 박대통이 ~를 방문하시어 ~~하라고 지시하셨다.' 

"박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들 확 바껴'

'오늘 이대통령이 ~~한 자리에서~~하라고 지시하셨다.

"이대통령 한마디에 모든~~들 긴장"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모든것을 다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국가 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고, 대통령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나라가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임기내내 고민하고 노력하신 분이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는 한가지는 '진정성'이다.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인간적 모습만 비춰졌다.

하지만 당시 국가를 생각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고자 같이 고민했던 사람들은,

언론과 별개로 '노무현'의 능력 또한 높이 평가 했을 것이다.

발목을 잡는 쪽은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 주류세력이었다.

그때 국민이 왜 무서운지도 알았고, 왜 군사정권 시절 언론을 탄압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불만과 남탓은 세상을 좀먹는 행위라 했는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 보라고 하셨나??

맞다!! 나도 비판과 내가 할 수있는 일이 아닌 남탓만 하다보니 많이 피례해 졌다.

그럼 그때 당시 모든것을 색안경 끼고 꼬아 보시던 분들은 지금 긍정적으로 보시는가??

최소한 규형잡혔다 하면 똑같은 무게추로, 똑같은 잣대로 사안을 평가하기 바란다. 그때와 지금을...


소신과 원칙이라고 했는가??

소신과 원칙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잃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국정 운영 원동력이 떨어질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국가 전체를 위해 파병과, FTA를 결정한 선택이 소신과 원칙인 것이다.


노무현의 신격화인가??

최소한, 국가를 위해 노력한 한 개인 '노무현'으로써,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상황에서,

최소한의 변론이고 최소한의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국가를 위해 노력한 한 개인 '노무현'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이다.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 또 생각나는 사람이, 그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능하다 이야기 할때도 참았다. 선거를 통해서 가진 권력이니까

말로만 그들이 자신들의 공을 쌓을때도 참았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니까...

그러면 적어도 그렇게 밖으로 포장하는 동안 내실을 다졌어야 할 것 아닌가...

내실 없는 포장, 질소뿐인 과자는 사기나 다름 없다.

그렇게 계속 덮기만 하고 포장만 하다보니깐, 안에서는 썩어 문드러져 이런 사고가 나는것이 아닌가??


다시한번 이야기 하고자 한다.


책임 다하지 못하는 선장의 행위는 살인이나 다름 없다 하였는가??

그렇다면 한가지 묻고 싶다.

권한만 가지고, 책임은 없는 대통령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간곡히 청한다.

참여정부에서 배울 것은 배우길 다시한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