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파업.
근래 우리 사회에서 '파업'은 '불법'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지는 일이 많아졌다.
아니! 이제는 파업=불법 이라는 웃지못할 공식이 성립되었다.
물론 불법 파업도 존재 한다.그러나 굳이 '10프로의 썩은 사과'를 설명하고자 '힘의 이동'과 '역사의 반복'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오늘 내가 하고픈 말은 하나니까!!

왜 그들이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가?! 제대로 헤아려 보자는 거다!!

언론에서는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파업'이라며
적어도 나의 동의 없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고 있다. ...
언론이 '국민'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은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뭐 계속해서 언론이 떠들어 댄다면 '베이컨의 시장과, 극장, 동굴 어쩌면 종족'의 4관왕을 달성하며 진정 '국민이 동의 하지 않는 파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진정 '의도를 가진, 또한 힘마저 가진' 이들의 이야기도 접어두자.)
중요한 것은, 권력이 발생하는 근원인 '국민'으로서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조금은 자세히, 그리고 마음을 열고 알아 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언론이라는 '권위'가 떠들어 댄다 하여 앵무새 마냥 그 권위를 옮기지 말고, 또한 답을 먼저 정해 놓지도 말고, 하나하나 시비(是非)를 가려보자.
입에 풀칠하기에 바빠 내일이 아닌 일들에 무관심 하지말자.
또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나의 스트레스 풀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쉽게 이야기 하지도 말자.

어리석은 국민이 많아 질 수록 그 사회는 위험해 진다.
또한 지혜로운 국민이 많아 질 수록 다가올 사회의 위험을 예비할수 있다.
독일 나찌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 있었고, 미국 메카시의 사건이 보여주는 교훈이 있었다.
전쟁이후나 60년이 지난 지금이나 먹고살기에 바쁜 우리네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인용구가 있다. 아직 정확한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그의 인터뷰에서 비롯된 것이고,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이기도 한 마르틴 뉘밀러의 '그들이 내게 왔을때'이다.

"(독일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wikipedia-

쌍용차,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코레일, 의사협회에 이르기 까지...
하나 더 얻고자 현재의 주어진 것을 포기하며 까지 대치상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남지 않은 '하나'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경계에 서는것이다.
너와나 우리가 서로 손잡고 굳건한 반석을 다질때,
대의민주주의는 그 균형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