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언론의 선전이 필요할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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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산적 여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소모적 논란만 양산되는가??


모두가 화합과 통합, 신뢰를 요구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크게는 옳바른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문제점에서 부터, 언론환경의 구조적 문제, MB정권 이후 언론장악에 이르기 까지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한다. 언권유착과 언론장악은 이번 글에서 논 외로 하자. 이번 글에서는 단순히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언론 환경만을 따져보자.


사실 이전까지 언론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빠지지 않는 주체가 조중동이었다. 보수 메이저 언론이 독점하고 있는 국내 언론환경의 문제점은 가장 큰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혹자는 인터넷의 보급, SNS(Social Network System)의 활성화로 그런 문제점은 없다고 하지만 분명 따져보아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신문사를 넘어 포털에 대해서 까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외치지만 아직 폐쇄적인 한국사회 
필자는 작금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1) 포털의 독점 과 2)훼손된 정보의 신뢰도 에서 인했다고 본다. 인터넷의 순기능적 측면을 바라보며 발전을 기대하는 우리로서는, 대한민국 10명중 7명이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 녹색화면이 뜨는 놀라운 집적도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고 수용되어야 할 토론의 장은 요원하기만 한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1)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기사와 기사 배치, 인기 검색어들은 이슈의 집적도를 높임과 동시에 그 파괴력또한 높이고 있다. 이는 포털을 권력아닌 권력으로 만들었고, 법적이든 도의적이든 책임은 쪽~뺀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만들었다. 정보의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기사만을 찾기 시작했고, 진실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보의 생산자, 또는 배포자들이 그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금 안에서 머물며, 끼리끼리 모이며 서로 심적 안정감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 2)배역을 맡은 행동대장이 앞장서 싸우가 시작하면 소속 부대원들은 스스로 핑거파이터를 자청하며 최전선에서 싸운다. 가상의 싸움이기에 게임 아닌 게임을 즐긴다. 결국 다양성의 인정과 상호존중 속에서 이루어 져야 할 토론이, 공격적 토론으로 이어지고, 이도 잠시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 이제 이는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여론이 되고 분열을 가져온다. 대안적 변화를 기대했던 SNS역시, 포털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모두들 겉돌기만 하는가??

정보의 불신은 파워블로거의 몰락이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오로지 자기 하는 일이 좋아 제품을 객관적으로 리뷰하고 글을 쓰던 블로거들이, 자신이 오래도록 쌓아온 신뢰를 업체아 팔아넘기며 자신이 쓴 글이 짜라시가 되어버린 수많은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구매자들에게 구매의 기준이 되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자 역할을 했다면, 업체의 스폰을 받은 이후의 블로거는 단지 상품의 광고를 올리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업체의 스폰을 받고 난이후 블로거가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척 한다면, 이는 정보의 소비자, 상품의 소비자에 대한 기만 행위이며 사기의 요소도 생각 해 볼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정보가 날로 늘고 있으니 인터넷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에 대한 정보를 넘어 정치 사회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우리가 마음 편히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것이다.

 

이럿듯 정보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면 토론에 있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전제가 사라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전제 위에서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하기에 접점을 찾을 수 없고, 합의접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접점을 찾을 수 없음은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논란만을 양산하는 토론이 되고, 이는 곧 토론이라 할 수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논의라는 것들이 논란의 양산만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보의 소비자임을 인식하자!

그렇다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생산적 논의가 되려면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어떤것 들이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가지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 스스로가 정보의 생산자도 될 수 있지만 소비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보의 생산보다 소비를 더 크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보의 소비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보의 소비는 우리가 유용한 방법으로 정보를 이용하여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는 것 또한 정보의 소비이기도 하겠지만, 정보의 소비는 제화의 소비와는 달리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로 정보 접하므로 나타나는 현상들, 즉 정보의 생산자들이 어떠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정보를 생산하고, 그에 우리가 반응해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이루어 지는 것 또한 정보의 소비에 속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공된 정보는 말과 글인 언어로 이루어 지며, 말과 글은 화자 또는 필자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초중고때 배우는 비판적 글읽기, 또는 듣기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비판적이라는 것은 무조건 정보에 대한 반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글 또는 말에서 전달하는 바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또한 자기가 읽고 싶고, 듣고싶은 것만 들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정보를 접해야만 정보의 소비가 동시에 건전한 정보 생산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해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무조건 적으로 반대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듯, 자신이 정보의 소비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조그만 더 생각해 보자. 정보의 생산자는 정보의 유통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모든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정보 생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정보가 가져올 효과를 위해 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즉 정보가 가져올 효과에 대해 부적적 요건을 일부러 말하지 않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또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다보니 핵심을 이야기하거나 간추려 이야기 해야 하기때문에 선택적으로 정보를 가공할 수있다. 쉽게 말해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제한된 정보내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재생산 해야하는데, 정보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흔히 말하는 말의 앞뒤 다 잘라 먹고 한 부분을 이야기 하는 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는 필자 또는 화자의 역량 부족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소비자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며, 능동적으로 정보의 전달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보의 전달 전략에 있어 위의 방법만 있는가?? 빼는 방법에는 문맥을 잘라 특정 부분만 제시하는 전략이 있는가 하면, 아예 주제 자체를 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물급 정치인의 비리가 터졌는데, 연예인 스캔들이 더 많이 입에 오르내리더라, 또는 어떤 정치인이 좋은 정책을 내놓았는데 부정적 이야기들만 기사화 되더라, 또는 국가의 여러 정책들이 있는데 유독 하나의 정책들만 기사화 되더라 등등. 앞서 말한 문맥을 자르는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 또는 기사 내에서 행해지는 방법이지만, 후자의 방법은 아예 기사 단위로 누락이 되거나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의 논의가 이루어 져야 하지만 일부 방향으로만 논의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를 필자는 프레임의 선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특히 이 프레임의 선점은 대한민국이라는 한국어를 언어로 쓰는 여론환경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작 이슈가 되는 몇몇 사안들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 지고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이슈가 되지 않는 부분은,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담론들은 그냥 그림자의 뒷편에 방치된 채 우리가 생각지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를 배포하는 포털과 메이저 신문사들 언론사들이 높음 점유율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전략이다.

 

메이저 언론의 프레임 선정 능력. 그리고 화두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의 독점.

지금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이기에 사회적 문제를 단편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나와야 하고, 또 전문가들은 다양한 화두를 던져, 국민이 최대한 폭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 이야기를하기에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열악하다 못해 썩어있다. 소수 여론에 대해 마이크 마저 뺏어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논의만 진행하게 하는 환경이 썩어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소비자가 더 현명해 져야 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언론이 바로서야 하는 이유이고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이유이다. 문제점은 이렇듯 드러나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언론의 특성상 그들이 활동하는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하기도 하고, 그들이 권력화 된다면 분명히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들은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 지게 하는것, 스스로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스스로 신뢰를 쌓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적으로 외부에서 고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대안 언론 또는 그에 버금가는 대안 세력을 키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것. 1인 미디어가 활성화 되고, 대안언론들이 커야하는 이유이다. 이는 독점 포털이 기사를 전송하고 배치하는 환경에서는 어려움에 틀림없다. 또한 언론이 광고수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1인 미디어, 대안 언론을 경쟁력 이는 언론으로 키우는 지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