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해설서]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 수사권 주장과 생떼 사이



과하다.


이젠 국민도 세월호 정국에 지쳐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 세월호 정국의 어떤 지리멸렬한 싸움에 지쳐있는지를.


일단 잠잠해지길 기다리면 된다는, 권력을 가지고 힘으로, 불통으로 무조건 밀어 붙이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지금 통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이 정국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지금 사건을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국정 운여을 하는데 발목잡기 쯤으로 생각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모든 반대 의견은 정쟁일뿐, 어느하나 진지하게 국가가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해 본적이 없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반대의 의견을 국가전복이니, 반국가 세력이니 만들어 국민 모두가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그저 가십거리의 싸움으로만 만들고, 이슈를 자극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이러한 극한의 대립, 그 저변에는 그때그때 바뀌는 논리들, 자신이 야당시절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던 형태를 지금은 반국가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반의 국민을 적, 또는 암적인 존재, 또는 악인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바른길을 가자고 주장하고 논쟁하자는건데, 그러한 생각과 노력과 별개로, 자신들이 적폐 또는 악인으로 몰리다 보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는것이다. 적어도 이전까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표현을 했지 국가전복, 빨갱이, 종북, 적폐로 표현하며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이재오 의원이 얼마전 언급한 한비자의 충효편에 나오는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되새겨 볼만 하다. 정치란 무릇 평범한 자를 다스리기에 비범한 사람들인 위정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고려해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평범한 사람에 견주어 정치하는 사람들이 비범한 인물에 견주는 것이 지금 형국으로서 옳은가의 문제이다. 평범과 비범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나누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치에 있어 범인(凡人) 비범인(非凡人)을 나누는 기준에 있어 '자신을 삼갈줄 아느냐'를 그 기준으로 잡고 싶다.


한비자 충효편에 나오는 저 말은 대중의 위험성을 이야기 한것이 아닐까?? 군중의 무서움이란, 국가의 존재 이유는 백성(국민)이고, 그들은 나랏일(정치)에 정통치 못하니 판단의 기준이 잘 서 있지 않고, 그러니 쉬이 흔들리기에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국민이 뭘 몰라서 무식하다, 국민이 어리석은 존재라서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함을 통해 국가 기반을 떠받드는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힘들고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업보다 높게만 생각을 했지, '전문 분야와 비전문 분야'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물론 업무의 절대적인 어려움과 노력, 고통이 동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정자들을 높이 봐주고 우러러 보는것일 뿐. 국민이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것이다. 그렇기에 위정자들의 말에 쉬이 휘둘리는 것이다.


또한 결국 나라를 이끄는 힘을 부여 받은 사람들도 위정자들이다. 그들이 발휘하는 힘은 일개 개인이 발휘하는 힘보다 크기에 그 힘을 잘 삼가며 써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정자들은 자신을 삼갈 줄 아고 국민은 자신을 삼가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물론 집단적 대표 이름으로 따진다면 이런 욕하기에 앞서 자신을 무서울 정도로 삼가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위정자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탐욕이 큰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거나 바르지 못한 곳에 쓰기에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을 삼가려는 노력은 커녕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 또한 많은 것이다. 오히려 모든것에 열심히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론 저 위 높은 자리에 계시어 나랏일 하시는 분보다, 더 자신을 삼가고 자신의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다.


[[항상 집단의 명명( 예를 들어, 정치인, 언론인, 검찰, 경찰, 국민, 공무원)과 그에 대한 평가는 조심하고 그 세부 사항들을 별개로 볼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이라 해서 그들이 탐욕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라의 앞길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도 많을것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법과 원칙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검사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이 집단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다. 해서 필자가 비판하는 집단은 항상 '그 중 일부의~'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린다.  ]]


이러다 보니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정확히 지금 형국에 적용 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이재오 의원이 언급하신 위의 고사에 대한 당신의 고뇌와 생각을 추호도 비판하거나 평가 절하 할 수는 없다. 현재 문제에 대해서 소신있고 또한 큰 생각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삼가고, 비범한 인물이고, 또한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남들의 생각에 쉬이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무지몽매한 백성을 혼란스럽게 한는 것도 그를 이용해 정치적 힘을 얻으려 한 위정자들이었다. 자신을 삼가지 못해 대중을 무서운 존재로 만든것 또한 위정자들이다.


이 주장의 한편에는 일부 '깊은 성찰과 생각이나 철학 없이 정치를 하나의 편가르기와 누가 이기느랴를 가르는 스포츠 쯤으로 생각하는' 국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위의 이재오 의원께서 언급한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가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 새정치 가를 것 없이 모두가 잘못되었다. 새누리 역시 철저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국정운영에 빚을 차질만을 생각한채 불통한 것이, 또한 그 죄를 오롯이 새정치에게 떠넘긴 것이 문제고, 새정치 역시 세월호 사건을 진심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계산기만 두드린 것이 잘못되었다. [ 물론 새누리, 새정치 내에서 진심으로 문제에 접근했던 사람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폄훼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과 수사권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현실적으로 불가능 해 보이며, 유가족 측이 너무 강경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지불식간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필자가 유가족의 입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련의 행간을 읽으면, 이런 인재로 다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와 원인규명, 그리고 그런 기념비적(추념비적이라 해야 옳은 말일까??) 사건의 해결로 망자를 위로하고 그들을 지키는것. 그들이 원하는 궁극이 아닐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소권과, 수사권인가??

사실 지금껏 특검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을 했던 적인 얼마나 있었던가?? 이슈의 활성화에는 기여를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진채 적폐를 뿌리뽑았던게 얼마나 되는가??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의 특검은 여야의 정치적 과정에 불과했기에 정치권의 특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가 추진중인 가족의 3배수 추천 특검 또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언론 지형으로 정부와 여당이 비협조적으로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다시말하면 현재의 제도와 법 아래에서는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가능 해 보이는 사안을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며 생떼를 부리는가?'라는 슬로건에 메달리지 말고,

왜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 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현 법과 제도의 한계를 생각하자.



끝으로 이재오 의원이 언급한 고사로 끝맺으려 한다.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 道也者 道常者也(도야자 도상자)

정치는 평범한 이를 다스리는 것이고,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