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경계



지금 주변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의 고마움,

공기의 고마움,

부모님의 고마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을..


그러하듯 

또한 당연한 것들에 대해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지금 자유롭게 마시는 물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들이마시고있는 공기가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또 언제까지 내 존재가 어제와 같이 늘 당연함으로 남을지...


기우(杞憂)가 아닌 당연한 것들에 대해 적절한 긴장감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언제까지 영원할지

뉴스는 내게 언제나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
정치인들만 정치를 한다는 생각
정치면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대형마트의 확장은 소비자들이 값싸고 편안한 쇼핑을 돕는다는 생각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거라는 생각
나라가 잘사는게 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생각
반대로 나라가 못살면 국민이 못산다는 생각
자유시장경제는 절대 선이고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라는 생각
그런 경제체제로 나타난 결과로 자유시장경제가 승이고 공산주의는 패라는 생각
이런 이분법적 생각이 모든 본질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

뒤틀어 보아야 한다.
뉴스를 본다는 것은 정보의 습득이라 생산적 활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집필자 또는 편집자에 의해 생산되고 
독자와 시청자는 그러한 컨텐츠를 접하므로서 소비하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
절대적인 객관은 있을 수 없지만, 그에 따른 균형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공인들은 정치적 표명을 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중립적 처사다라는 말에도 오류가 있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정치적이지 않는가? 오히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정치가 아닌가??
때론 인간으로서의 당위성이 정치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지극히 정치적 이약기가 논의를 피하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왜 보편적 복지, 일반적 복지라는 말 대신에 무상교육, 무상 보육, 공짜를 뜻하는 무상이라는 말들이 이 앞에 붙을까??
그러고 아이들 밥먹이자고 하는것도 정치라고 한다.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정치인들 정제계 권력자들이 허투로 쓰는 돈을 줄여서 
경제적 어려움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만큼은 배굶기지 말자는 건데...
그리고 이는 곧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해결되어 국민이 되돌려 받는 것인데...

무상이라는 말로 국가가 백성에게 주는 시혜(施惠)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밥준다고 하면 정치적이라 한다.
그래서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
그렇다면 권력자와 그들의 조력에 힘쓰는 세력들을 위한 예산의 배정에 있어 그들이 감내해야할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정론으로 몰고 가지 말라 하는데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포함 되어 있지 않은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양적 중립이 필요한다.
무 자르듯 정답이 정해진것이 아니다.
그래서 또 어거지 논리로 사람을 혼란스럽게도 한다.
그러나 분명 그런 비판이 두려워 해야할 이야기를 참지는 말자.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니라 옳은 길을 찾기 위하 논쟁은 하자
그리고 그러한 싸움을 위한 일인지 일이 잘되어 가기를 바라는 일인지는 
한발 물러서서 한번 생각해 보자.
토론을 하자!!

대형마트가 늘어나면서 쇼핑하는 소비자의 편의는 증대되나, 그로 인한 골목상권은 죽어간다. 소비자를 잃어 간다.
대형마트는 이익의 이미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생존과 거대 자본의 초과 이익이 교환되는 실정에 이른것이다.
소비자를 쥐어짜는 국내 기업과 소비분위기
결국 기업은 잠재적 소비시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런 기업들이 늘어나면 또 결국 기업들간 서로의 피를 빨아 먹는 상황에까지 가는 것이다. 지금이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완벽한 선과 승으로 공산주의는 완벽한 악과 패로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이야기 되고 있다.
이념이 무서운 것은 이런 단어로 거기에 넓게 걸쳐진 의미들과 본질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체제의 문제는 극히 일부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욕구, 경계와 감시의 문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권력자의 욕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약하다. 그렇기에 쉽게 도탄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 자유주의는 안녕한가??
마찬가지다
최대 권력자, 권력 집단, 권력 계층이 비판이나 경계 감시받지 않고 욕구를 무한히 드러내게 되면 그만큼 사회는 썩어 빠지고 병들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새누리가 나쁘고 새정치가 깨끗하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다 다 똑같은 이익 집단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의 역기능에 무관심으로 일갈하고, 무관심이 그들의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면,
곧 그 폐단의 축복은 국민들이 질 몫이요 짐이다.
그들의 순기능은 순기능끼리, 역기능은 여기능끼리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한다면 싸움은 파국으로 밖에 치달을 수 없다.

또한 독주를 경계해야 한다.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것은 그사람의 자질이나 능력 도덕성, 정책과는 상관없이 든든한 뒷배가 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분명히 퇴색하게 되어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전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
누군가에게 적용했던 기준을 ,누군가에게는 적용하지 않는지,
비슷한 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쪽의 편에서서 치우쳐 듣지 말고, 양쪽을 다 한번 비교해 보자.
분명 서로의 논리적 모순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떡밥에 물리지 말고,
우리가 갈 길을 가자 
국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