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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열날
  2.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아홉날
  3.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여덟날
  4.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5.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일곱날
  6. 개인주의에 대해
  7. 자유의 의미를 아는가??
  8.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여섯날
  9.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다섯날
  10.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네날
  11.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셋날
  12.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두날
  13.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첫날
  14. 세월호 특별법 이렇게 처리하면 깔끔하다.
  15. [언론 해설서]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 수사권 주장과 생떼 사이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열날



어쩌면 사회가 병들고 있는것은

상처의 되물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절 받은 상처가
상처인지 모르고 당연시 되고
그것이 아들 딸에게로 전달되고

사랑을 대물림 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상처를 대물림 하는 가정이 있다

상처는 사랑으로 치료해야 한다
상처는 치유하거나 극복해서 꼬리를 물지말지어다
사랑으로 좋은것을 보자
현실은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자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아홉날



이해의 폭이 좁아 질 수록
많은 것을 잃는다

기회도
친구도
용기도
능력도

사회적 틀이 견고해 질수록
잃는것 또한 많아진다

사회적 부적응자도
마음 여린 아이들도
세상의 모든 약자들도

다른것은 어느새 틀린것이 되어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어느새 틀린것으로 규정하고
틀린것은 어느새 증오가 된다

정답만 찾으려 한다면
자신이 정한 정답에 세상을 맞추려한다
틀린것은 곧 증오가 된다

웃기지만 그런 웃긴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여덟날



겁쟁이가 되지 말자.


차라리 깨져라.


내딛지 않고 절대 얻을 수 없는것들이 너무 많다.


머리속에서 이루어 지는 천하는 결국 내가 아는 만큼만 이루어 진다.

하지만 명심하자!!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예측 가능한 세상이라면 재미도 스르모 괴로움도 충격도 없는거다.


상처 받는게 두려워 머물지 말고

상처에 익숙해 져라.

단단히 거칠어 지기만 하는게 아니다.

좀더 깊고 넓어져

이해의 폭이

또 누군가 쉴수 있는 품을 만들것이다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새바캬 발론반!!


賽朴野 反論半

새박야 반논반


새누리와 박근혜댓통령은 야당시절 반정부투쟁하던때 논리의 반만이라도 하십시오!!


우리 같이 외쳐요!!


어떠한 연유로든 낚시성 쟁점에 논점이 분산되고, 문제의 본질이 희미해져 결국 흐지부지 되는 이런 악순환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과거에 당신들이 내걸었던 논리를 반만이라도 실천하십시오!!!




따지고 보면 진보가 가장 화난 이유는 바로 수구(진정한 나라를 위한 보수가 아닌 권력을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세력)가 


언론의 실세를 등에 업고 말로만 혹세무민하고 감언이설하고 뒤돌아서 호박씨 까고 토사구팽하니 


적어도 자신들이 정치적 술수로 지난 진보정권에서 재미를 봤으면


지금 새정치가 하는 정치적 장치들은 조금이라도 그 방법론으로 인정을 해 줘야 할것 아닙니까??


지금 모든 법과 힘 정당성은 자기들 위주로 해석해 놓고, 그렇게 여론을 조성해 놓고, 


일말의 양보도 없이 새정치와 국민들에게 '입닥치고 따라와' 라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면 진정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 당신들은 존재하는 것인가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일상적인 방법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기에 점점 더 효과적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하나의 슬로건으로 통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바캬!!! 발론반!!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일곱날



머리속에만 존재하는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 밖 세상에서 실재(實在)하고 있다.

머리속에서야 천하를 이루고 모든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입과 행동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적어도 누군가와 입과 귀를 통해 의식이 흘렀을때 비로소 존재하며

행동으로 옮겨졌을때 비로소 존재함을 인정받는것이다.


머리속이 아무리 복잡하고, 가슴으로 앓았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생각과 감정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용기로 존재를 이끄는 것이다.

용기로 이끌지 못한 생각과 감정들은 비겁함 뿐이다.


나중이 아니라 !!


지금이다!!


개인주의에 대해



서양의 개인주의는 내가 존귀한 만큼 나 아닌 타인도 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모두를 존중하라는 의미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은 닮아 있다.


동양은 '우리'를 중시한다.

나의 집이 아닌, 우리 집,

내 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

내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공동체를 중시한다.

이에 반해 서양은 '개인'을 중시한다.

나의집, 나의 학교, 내 나라


어떻게 보면 정 반대에 있어 보이는 '우리'와 '개인'은 사실 닮아 있다.

서양의 개인주의는 '나 혼자만이 위대하고 중요하다' 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귀중한 존재인 만큼, 타인 또한 귀중한 존재이기에

나를 대하듯 남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모두를 향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주의를 이상한 이기주의로 번역을 하고 왜곡해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돈이면 다 되는 배금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와 엉켜 오로지 나만이 중요하다가 되었다.


합리적인것, 인본적인것, 사람을 생각한다는 기본적인 것들을

옳고 그름을 다투어야 할 정쟁의 링위 끌어 놓다 보니

나라가 혼란스럽다.


모두가 정치의 희생양이다.









자유의 의미를 아는가??



자유란 자신의 자유가 상대가 가진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자유대학생연합이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피자와 김밥등을 시켜먹으며 폭식투쟁을 한다고 한다.

물론 표현의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유'라는 것의 의미를 알까??

자유란 그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 질 수 있을때 자유다.

꼴리는 대로 하고싶은 대로 무책임하게 저지르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또한 자유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이런류의 자유들은 자유가 아닌 방임이며 (뭐 좋은 표현이 없을까??) 그저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동물과 다를바 없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이성적 제한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그 이성은 인본을 향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일베와 자유대학생 연합이 광하문으로 향해 유족을 조롱하고,

단식 농성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음식 냄새 풍기며 먹거리 잔치를 열겠다는 것은,

무슨동기에서 이며, 무엇이 그들을 광화문 유가족 앞으로 향하게 했을까??


그들은 과연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나 알까??

무엇을 원하는지 알까??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여섯날



오늘부터 너희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를 다시 내게 쓰는 일기 형식으로 바꾸려 한단다.

어떻게 보면 너희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는 내 스스로가 내게 하고싶은 이야기

또는 내가 겪으며 체득한 경험 생각들을 적어 놓은 것이란다.

내가 좀더 이런 교훈들을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것을

또 그런 이야기들을 너희는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거였단다.


그러나 이렇게 너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다 보니 느꼈어

결국 아버지의 이런 경험과 스스로가 체득한 교훈, 느낀점들을 

기쁜마음에 전하는 것이지만,


너희가 이 편지를 읽게 될 어느날인가

이 글이 가슴에 와 닿을지,

아니면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훈계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결국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아들에게 전했을 이야기들이

난 어렸을 당시 그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는지, 아니면 늘 같은 잔소리로만 여겨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결국 소통이 되어야 전해지는 것이고

소통이란것이 일방적으로 말하기만해서 되는건 아니까,

상대방의 가슴에 와 닿을때 비로소 통하는 것이기에,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단다.


그래서 그냥 내가 느낀 느낌들 그대로를

지금의 나 스스로에게 일기를 쓰면,

누군가 타인이 너에게 하는 훈계나 잔소리가 아닌,

또 다른 너가 너에게 쓰는 글이라 생각하면 좀 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일기 형식으로 바꿔본다.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다섯날



처음부터 모든걸 완전히 갖춰 놓고 시작할 수는 없단다.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거란다. 그러면서 채워가는 거야.


요건이 갖추어 지기까지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단다.

또 요건이 갖추어 지기까지 준비하는 동안 흩어지기도 한단다.


시작은 늘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하는거야.

또한

늘 완벽한 상태로 끝나는 것도 아니란다.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네날



아들아 딸아!!

무작정 하면 보이지 않던 해답이

열심(熱心)히 진심(眞心)으로 보면 보일때가 있단다.


그냥 무의미하게 수동적으로 시간을 사용하지 말고

마음이 끓어

해답을 찾아 보렴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자 한글자 곱씹어 보는것도 중요하단다.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셋날



호흡에 끌려다니지 말고

호흡을 조절해보렴.


호흠을 느껴보렴.

긴 들숨과 날숨속에서

너의 몸이 어떻게 반응한지 느껴보렴.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때

호흡을 조절해 보렴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그리고 그 느낌을 기억하렴.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두날



내 아들 그리고 내 딸아!


세상에 신이 존재치 않는다 생각하지 마라

남들이 보지 못하더라도

항상 널 굽어 보고 계신 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사람의 오감안에서, 그리고 또 생각으로 특정하고 사유할수 없기에 저 위에 계신 것이란다.

인간의 생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신이 아닌게지..


노력이 배신한다 여겨지는것은

아직 네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고,

정의로운 자는 불이익을 당하고, 악한 이들이 더 잘 살아가는듯 하는듯 보이지만, 때로는 그런 일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한편의 긴 영화에서 한장면일 뿐이다.

한 장면이 영화의 전부일 수 없듯, 한장면에 얽메여 한편의 영화를 망치지는 말거라.

다만 너만의 상상력으로, 너의 방법으로, 

그러한 스토리속 사건들을 풀어보렴.


신은 존재한다.

너의 지금 노력을 굽어 살피고

너의 정성을 굽어 살피고 계시단다.


다만 앙상한 가지의 고독함이 길다 여겨지는 것은,

그만큼 네가 꽃피울 봄날도 길 것이요,

네가 맺을 열매 또한 크고 달것임을 의미한단다.

결국 네가 커야할 만큼 

인고의 시간도 긴 것이란다.

결코 거짓은 없단다.


그러니

현재를 사랑하고

현실에 살며

오늘을 치열하게 살거라


치열한 만큼 

문득 문득 찾아오는 

쉼, 여유의 감사함을 알게 될거야.


허다하게 널린 쉼과 여유는

그 의미와 가치를 퇴색시킨단다.

쏟아붓는 폭우에는 물의 소중함이 아닌 두려움이지만

가뭄의 단비는 적은 양이지만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법이거든.



너에게 주어진 오늘의 운명을 즐기렴!!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첫날



내아들 내딸아!


사랑한다는 말은 '지금' 하는 거란다.

'나중'에 할 수 있는 말은 후회 뿐이란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렴!!





지금 용기를 내거라.

망설여 진다면 지금 하는게 맞단다.

네가 네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래 !! 

지금 용기를 내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라 낙담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말거라

소중한 것일 수록 금방 보이지 않는것이란다.

그러니 네 신념을 가지렴

네가 믿는것, 네가 결정한것!! 결국 귀하게 쓰일 날이 있을거란다.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라 또 낙담하거나 슬퍼하지 말아라.

지금 네게 찾아온 아픔은 

오늘의 널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시험같은거란다.


그래

늘 좋은일만 있을 수 있는것도 아니고

늘 슬픈일만 있는 것도 아니란다.


오늘 내게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고

의도치 않게 찾아온 어려움은 하루 빨리 이겨내렴.

그래..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거야

다만 널 성장 시킨 과거가 되어있을 거니까...

그러니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 용기를 내렴



늘 뻔한 이야기지만

또한 

늘 지키기 어려운 일들이란다.


그래서 인생인 거야.




내가 저지른 후회를

너에겐 이런 후회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기에

고리타분한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전하는 거란다.





세월호 특별법 이렇게 처리하면 깔끔하다.



긴말 필요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 당은


자신들이 야당시절, 참여정부를 공격했던 논리의 반만이라도 지켜라!!


지금의 새정치가 보이는 정치력은 과거 한나라당이 펼쳤던 정치술수보다 비교도 안될만큼 힘없다.


지금 새정치의 모든 행동들이 생떼면서 국정 발목잡기라면, 그때의 모든 행동들이 악의적이고 국정운영에 차질을 줄 목적이었음을 인정하라!!


자신들이 안전한 한국 만들겠다던 약속이 그저 입에발린 공약이었음을 인정하라!!


[언론 해설서]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 수사권 주장과 생떼 사이



과하다.


이젠 국민도 세월호 정국에 지쳐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 세월호 정국의 어떤 지리멸렬한 싸움에 지쳐있는지를.


일단 잠잠해지길 기다리면 된다는, 권력을 가지고 힘으로, 불통으로 무조건 밀어 붙이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지금 통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어떻게든 이 정국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지금 사건을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국정 운여을 하는데 발목잡기 쯤으로 생각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모든 반대 의견은 정쟁일뿐, 어느하나 진지하게 국가가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고민해 본적이 없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없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반대의 의견을 국가전복이니, 반국가 세력이니 만들어 국민 모두가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를, 그저 가십거리의 싸움으로만 만들고, 이슈를 자극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이러한 극한의 대립, 그 저변에는 그때그때 바뀌는 논리들, 자신이 야당시절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던 형태를 지금은 반국가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반의 국민을 적, 또는 암적인 존재, 또는 악인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바른길을 가자고 주장하고 논쟁하자는건데, 그러한 생각과 노력과 별개로, 자신들이 적폐 또는 악인으로 몰리다 보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는것이다. 적어도 이전까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표현을 했지 국가전복, 빨갱이, 종북, 적폐로 표현하며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이재오 의원이 얼마전 언급한 한비자의 충효편에 나오는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되새겨 볼만 하다. 정치란 무릇 평범한 자를 다스리기에 비범한 사람들인 위정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고려해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평범한 사람에 견주어 정치하는 사람들이 비범한 인물에 견주는 것이 지금 형국으로서 옳은가의 문제이다. 평범과 비범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나누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치에 있어 범인(凡人) 비범인(非凡人)을 나누는 기준에 있어 '자신을 삼갈줄 아느냐'를 그 기준으로 잡고 싶다.


한비자 충효편에 나오는 저 말은 대중의 위험성을 이야기 한것이 아닐까?? 군중의 무서움이란, 국가의 존재 이유는 백성(국민)이고, 그들은 나랏일(정치)에 정통치 못하니 판단의 기준이 잘 서 있지 않고, 그러니 쉬이 흔들리기에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국민이 뭘 몰라서 무식하다, 국민이 어리석은 존재라서 무지하다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일에 충실함을 통해 국가 기반을 떠받드는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즉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힘들고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업보다 높게만 생각을 했지, '전문 분야와 비전문 분야'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물론 업무의 절대적인 어려움과 노력, 고통이 동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정자들을 높이 봐주고 우러러 보는것일 뿐. 국민이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것이다. 그렇기에 위정자들의 말에 쉬이 휘둘리는 것이다.


또한 결국 나라를 이끄는 힘을 부여 받은 사람들도 위정자들이다. 그들이 발휘하는 힘은 일개 개인이 발휘하는 힘보다 크기에 그 힘을 잘 삼가며 써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정자들은 자신을 삼갈 줄 아고 국민은 자신을 삼가는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물론 집단적 대표 이름으로 따진다면 이런 욕하기에 앞서 자신을 무서울 정도로 삼가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위정자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탐욕이 큰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거나 바르지 못한 곳에 쓰기에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을 삼가려는 노력은 커녕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 또한 많은 것이다. 오히려 모든것에 열심히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론 저 위 높은 자리에 계시어 나랏일 하시는 분보다, 더 자신을 삼가고 자신의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다.


[[항상 집단의 명명( 예를 들어, 정치인, 언론인, 검찰, 경찰, 국민, 공무원)과 그에 대한 평가는 조심하고 그 세부 사항들을 별개로 볼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이라 해서 그들이 탐욕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라의 앞길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도 많을것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법과 원칙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검사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이 집단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다. 해서 필자가 비판하는 집단은 항상 '그 중 일부의~'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린다.  ]]


이러다 보니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를 정확히 지금 형국에 적용 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이재오 의원이 언급하신 위의 고사에 대한 당신의 고뇌와 생각을 추호도 비판하거나 평가 절하 할 수는 없다. 현재 문제에 대해서 소신있고 또한 큰 생각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삼가고, 비범한 인물이고, 또한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남들의 생각에 쉬이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무지몽매한 백성을 혼란스럽게 한는 것도 그를 이용해 정치적 힘을 얻으려 한 위정자들이었다. 자신을 삼가지 못해 대중을 무서운 존재로 만든것 또한 위정자들이다.


이 주장의 한편에는 일부 '깊은 성찰과 생각이나 철학 없이 정치를 하나의 편가르기와 누가 이기느랴를 가르는 스포츠 쯤으로 생각하는' 국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위의 이재오 의원께서 언급한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가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새누리 새정치 가를 것 없이 모두가 잘못되었다. 새누리 역시 철저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국정운영에 빚을 차질만을 생각한채 불통한 것이, 또한 그 죄를 오롯이 새정치에게 떠넘긴 것이 문제고, 새정치 역시 세월호 사건을 진심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계산기만 두드린 것이 잘못되었다. [ 물론 새누리, 새정치 내에서 진심으로 문제에 접근했던 사람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진심을 폄훼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기소권과 수사권 주장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현실적으로 불가능 해 보이며, 유가족 측이 너무 강경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지불식간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필자가 유가족의 입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련의 행간을 읽으면, 이런 인재로 다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와 원인규명, 그리고 그런 기념비적(추념비적이라 해야 옳은 말일까??) 사건의 해결로 망자를 위로하고 그들을 지키는것. 그들이 원하는 궁극이 아닐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소권과, 수사권인가??

사실 지금껏 특검이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을 했던 적인 얼마나 있었던가?? 이슈의 활성화에는 기여를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진채 적폐를 뿌리뽑았던게 얼마나 되는가??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의 특검은 여야의 정치적 과정에 불과했기에 정치권의 특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가 추진중인 가족의 3배수 추천 특검 또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언론 지형으로 정부와 여당이 비협조적으로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다시말하면 현재의 제도와 법 아래에서는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가능 해 보이는 사안을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며 생떼를 부리는가?'라는 슬로건에 메달리지 말고,

왜 유가족들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 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현 법과 제도의 한계를 생각하자.



끝으로 이재오 의원이 언급한 고사로 끝맺으려 한다.


治也者 治常者也(치야자 치상자야) 道也者 道常者也(도야자 도상자)

정치는 평범한 이를 다스리는 것이고,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


도는 상식적인 것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