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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괜스레 장난처럼..
  2. 모두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기쁜 마음에...
  4.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경계
  5. 나무하러 와서 물만먹고 가는 일은 없어야지
  6. 내가 사랑하는 사람
  7. 완생을 향해 달리는 미생
  8. It ain't over til It's over.
  9. 혹시나...
  10. 읽기 챆!!
  11. 신고리 1호기 발전 정지
  12. 범사(凡事)에 감사하며 오늘도 기도하게 해주소서.
  13. 김성주 적십자 낙하산으로 본 새누리계열의 권력 유지 방식
  14. The giver : 기억 전달자 (계속)
  15.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열한날

괜스레 장난처럼..



괜스레 장난처럼 툭툭 던져볼까 

그렇게 편하게 공통분모를 넓혀갈까...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되는데...


그게 정말 잘 안돼.


모두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축하해 주셔서 갑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워.


혹시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잊지 않아줘서...


기쁜 마음에...



너무 과했나?


왜이렇게 바보같지??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경계



지금 주변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의 고마움,

공기의 고마움,

부모님의 고마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을..


그러하듯 

또한 당연한 것들에 대해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지금 자유롭게 마시는 물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들이마시고있는 공기가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지금 자유롭게 연락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연함으로 남을지

또 언제까지 내 존재가 어제와 같이 늘 당연함으로 남을지...


기우(杞憂)가 아닌 당연한 것들에 대해 적절한 긴장감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언제까지 영원할지

뉴스는 내게 언제나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
정치인들만 정치를 한다는 생각
정치면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대형마트의 확장은 소비자들이 값싸고 편안한 쇼핑을 돕는다는 생각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거라는 생각
나라가 잘사는게 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생각
반대로 나라가 못살면 국민이 못산다는 생각
자유시장경제는 절대 선이고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라는 생각
그런 경제체제로 나타난 결과로 자유시장경제가 승이고 공산주의는 패라는 생각
이런 이분법적 생각이 모든 본질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

뒤틀어 보아야 한다.
뉴스를 본다는 것은 정보의 습득이라 생산적 활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집필자 또는 편집자에 의해 생산되고 
독자와 시청자는 그러한 컨텐츠를 접하므로서 소비하는 생산과 소비의 관계
절대적인 객관은 있을 수 없지만, 그에 따른 균형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공인들은 정치적 표명을 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중립적 처사다라는 말에도 오류가 있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정치적이지 않는가? 오히려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정치가 아닌가??
때론 인간으로서의 당위성이 정치의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지극히 정치적 이약기가 논의를 피하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왜 보편적 복지, 일반적 복지라는 말 대신에 무상교육, 무상 보육, 공짜를 뜻하는 무상이라는 말들이 이 앞에 붙을까??
그러고 아이들 밥먹이자고 하는것도 정치라고 한다.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정치인들 정제계 권력자들이 허투로 쓰는 돈을 줄여서 
경제적 어려움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만큼은 배굶기지 말자는 건데...
그리고 이는 곧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해결되어 국민이 되돌려 받는 것인데...

무상이라는 말로 국가가 백성에게 주는 시혜(施惠)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 밥준다고 하면 정치적이라 한다.
그래서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
그렇다면 권력자와 그들의 조력에 힘쓰는 세력들을 위한 예산의 배정에 있어 그들이 감내해야할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정론으로 몰고 가지 말라 하는데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포함 되어 있지 않은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양적 중립이 필요한다.
무 자르듯 정답이 정해진것이 아니다.
그래서 또 어거지 논리로 사람을 혼란스럽게도 한다.
그러나 분명 그런 비판이 두려워 해야할 이야기를 참지는 말자.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니라 옳은 길을 찾기 위하 논쟁은 하자
그리고 그러한 싸움을 위한 일인지 일이 잘되어 가기를 바라는 일인지는 
한발 물러서서 한번 생각해 보자.
토론을 하자!!

대형마트가 늘어나면서 쇼핑하는 소비자의 편의는 증대되나, 그로 인한 골목상권은 죽어간다. 소비자를 잃어 간다.
대형마트는 이익의 이미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생존과 거대 자본의 초과 이익이 교환되는 실정에 이른것이다.
소비자를 쥐어짜는 국내 기업과 소비분위기
결국 기업은 잠재적 소비시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런 기업들이 늘어나면 또 결국 기업들간 서로의 피를 빨아 먹는 상황에까지 가는 것이다. 지금이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완벽한 선과 승으로 공산주의는 완벽한 악과 패로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이야기 되고 있다.
이념이 무서운 것은 이런 단어로 거기에 넓게 걸쳐진 의미들과 본질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체제의 문제는 극히 일부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욕구, 경계와 감시의 문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권력자의 욕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약하다. 그렇기에 쉽게 도탄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 자유주의는 안녕한가??
마찬가지다
최대 권력자, 권력 집단, 권력 계층이 비판이나 경계 감시받지 않고 욕구를 무한히 드러내게 되면 그만큼 사회는 썩어 빠지고 병들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새누리가 나쁘고 새정치가 깨끗하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다 다 똑같은 이익 집단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의 역기능에 무관심으로 일갈하고, 무관심이 그들의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면,
곧 그 폐단의 축복은 국민들이 질 몫이요 짐이다.
그들의 순기능은 순기능끼리, 역기능은 여기능끼리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한다면 싸움은 파국으로 밖에 치달을 수 없다.

또한 독주를 경계해야 한다.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것은 그사람의 자질이나 능력 도덕성, 정책과는 상관없이 든든한 뒷배가 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분명히 퇴색하게 되어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전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따져 보자,
누군가에게 적용했던 기준을 ,누군가에게는 적용하지 않는지,
비슷한 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쪽의 편에서서 치우쳐 듣지 말고, 양쪽을 다 한번 비교해 보자.
분명 서로의 논리적 모순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떡밥에 물리지 말고,
우리가 갈 길을 가자 
국민들이여!!




나무하러 와서 물만먹고 가는 일은 없어야지



나무하러 왔다 물떠가면 치매


나무하러 왔따 물만먹고 가면...


중증...



내가 여기 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끔찍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같다면


































그건 생에 있어 가장 큰 행복이고,






























또한..











































기적이다.





































사랑의 기적.



























.


완생을 향해 달리는 미생



살아 있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말고,

완생을 향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미생이 되자.


살아 있지 않음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는 말이지 

머물러 있으란 말이 아니다.


체념의 미완이 아닌

과정의 미생이 되자.


완생을 향해 끊임없이 미생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완생을 향하자.

미생으로 남지 말자.


It ain't over til It's over.



It ain't over til It's over.


9회말 2아웃 패배가 눈앞에 있다.


번트라도 대는 심정으로...


그래서 어떻게든 연장에 들 각오로...


다시 시작하자...








혹시나...



그렇게 찾아본다.

숨겨둔 마음일지도 몰라서...



숲을 이루지 못한 꽃은 외롭고...



읽기 챆!!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저자
박원순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10-07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조국이 응원하고 박경철이 지지한다!박원순의 돌연변이 잡종 직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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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저자
존 엘킹턴, 파멜라 하티건 지음
출판사
에이지21 | 2008-10-1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비이성적이란? '비이성'은 단순히 정신적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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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저자
박창순, 육정희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0-01-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공정무역 따라 희망을 보다저자는 30여 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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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1호기 발전 정지



신뢰가 쌓이지 않으니까 늘 불안하다

올들어서만 벌써 몇번째인가??


목숨은 돈이 아니라서
세월호 같은 사고가 나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것인가??


도대첵 국민의 건강과 안녕의 가치는 
위정자들에게 어마나 된단 말인가??


신고리 발전 정지 소식을 들을때 마다

조마조마 하다.


국가간의 조롱과 자존심 싸움이 안보가 되어버린 이상한 나라...


국민의 안전과 안녕이 진정한 안보인 나라이고 싶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며 오늘도 기도하게 해주소서.



오늘 하루도 무탈히 지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이 나태해 질 수록, 

평안과 안락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소소한 행복들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모르고 또 하루하루가 흘러 가는것 같습니다.

내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주변의 시선에

주변의 목소리에 쉬이 흔들리고, 가슴떠려 합니다.


굳건한 의지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기도와 함께 간절한 나날을 보냈던 그때를 기억케 하시고

다시금 마음이 뜨겁게 기도하게 하소서.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닌,

가슴으로 기도 올릴 수 있게 늘 지켜봐 주소서.


이런 기도가 또 하루하루 잊혀질때면,

주님 

주님의 목소리로 다시금 두손 모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김성주 적십자 낙하산으로 본 새누리계열의 권력 유지 방식



중구난방 (衆口難防) , 성동격서 (聲東擊西)

여기서 빵 저기서 빵~

이러렇게 인사문제 사건사고 여기저기서 빵빵 터트리면서 이슈를 흐트러 트리고

이목이 다른데로 쏠린 틈을 타서 결국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다 이루어 낸다.


여기서 또 보온 안상수께서는 계란에 전치 2주라 하신다.........






The giver : 기억 전달자 (계속)



깨알 스포 하나!!

이것은 SF의 탈을 쓴 성인용 동화!!




뒷맛이 있는 영화다.

광고와 포스터는 볼거리 많은 SF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선택을 했다.


하지만 초반 배경이 되는 미래의 커뮤니티와 use the precise language로서 '언어 순화' 뒤에 가려진 통제를 발견하는 순간 단순한 오락물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극적 장치는 '조지 오웰의 1984' 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짐케리 주연의 트루먼쇼를 연상하게 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긴호흡과 함께 생각이 많았던 독자라면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가 될것이다.



<잿더미의 무채색에서 시작>

From the ashes of The Ruin,

the Communities were built.


Protected by the boundary


All memories of the past were erased.


use the precise language

wear your assigned clothing

take your morning medication

obey the curfew

never lie


영화는 흑백으로 그려진 미래의 한 지역에서 시작한다.

이미 파멸을 겪은 인류는 모든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정확한 언어'(여기서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들이 사라진듯) 사용

할당된 옷 입기

매일 아침 약물 투여

통금시간 준수

거짓말 하지 않기를 따른다.


<부정적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Jonas, your turn for feelings.

well, I guess sorry of terrified.

-The precision of language.

I mean anxious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통제되어 쓰지 않는다.

걱정이라는 단어로 통일해서 쓴다.


색깔 ,인종, 종교 모두 같게 만들었다.

달랐다면 시기하고 화내고 억울해 하고 증오에 사로 잡힐 수 있으니.


꿈이라는 단어가 없고, 음악이라는 단어도 없고, 춤이라는 단어도 없다.


memories are not the just past, they determine our future, you can change the things. you can make the things better



모든 언어가 통제 되어 있다.

통제되었기에,

살인, 전쟁, 증오, 시기, 차별이 없다.

얼마나 완벽한 세상인가?? 그래서 대론 모든것이 통제된 세상에 대한 동경을 한다.



그심정은 이해한다. 누구나 다 한번쯤 해보았을 법한 상상.

모든것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모든 시나리오가 짜져있고, 사건사고가 없는 이상을.

어떻게 보면 가장 깔끔하고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독재'를 찬양하는 어린양들에게 그저 모든것이 하얗고 깨끗하게만 보이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장점들로만 작동하는 세상이기에 완전무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독재나 모든것이 통제된 잘짜여진 시스템으로만 움직이는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통제 혹은 독재의 주체가 완전무결해야만 한다는 전제다.

고통과 증오가 없는 사회, 유토피아적 사회건설이라는 미명하에 

다양한 지식과 정보, 가치관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의 일방통행은 결국 

악의 없는 통제자라 할지라도, 무지의 불완전한 통제자에 의해 실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이런 명확하고 확실해 보이는 방법들도

선택권이 박탈된 제한구역 내에서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인은 양심의 문제를 떠나게 된다.

(스포일 수 있기에, 영화 보신 분들만 이해 할듯하네요)

바꿔 말해 때론 악이 통제자에 의해 통제된 제한구역 내에서 양심의 문제를 떠나 그냥 일상이 되어 버릴수도 있다.




특히 파피용에서 느꼈던 인간사의 발전과, 헤겔의 그것에 대한 숙제는 영화를 본 지금도 계속 남아 있다.

피라밋처럼 정반합으로 이루어 올라가는, 혹은 발전해 가는 선형적 인간사를 생각할 것인지

정과 반 합이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반복 될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필자도 정반합에 대해 습자지 처럼 얇은 정의만 사전을 참고해 알고 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했는가? 혹시나 필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생각들을 공유해 보고, 또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생각을 모아 보고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전자의 합은, 인간은 언제나 발전의 곡선을 그리며, 언젠가는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이고, 그렇기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합을 잘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논쟁이 있을 것이고,

폐곡선상의 합은 디스토피아로 갈것인가? 유토피아로 갈것인가의 절대적 답이 정해진 일방향의 흐름이 아닌, 

언젠가는 또 반복되기에, 디스토피아 유토피아가 무의미한, 그저 지금 세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기에 물 흐르듯 몸을 맡겨 흘러 간다는 의미에서 본 변증법이다.


이미 눈치를 챈 독자도 있을 것이다.

헤겔의 그것은 

칼로 무자르듯 하나를 나누어 놓고 

갈라진 나머지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정과 반의 적절한 조화, 융합이 결국 합인 것인데,


우리는 하나의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고 정과 반 둘중 하나를 합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우리 사회는 그런 극단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통제와 개방

제한과 자유

평등과 차이

분배와 성장

경영자와 노동자

하물며 선과 악까지


이 모든것들이 서로 양극에 서있어 방향이 다른듯 보여도

두동강나 합쳐질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무가 아닌

정과 반의 대립속 하나로 균형있게 융합되어야 할 단어들이 아닐까??

















아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열한날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기 위해 신문과 뉴스를 접해야 한다.

그러나 신문과 뉴스 보다는 좋은 책을 많이 읽자.


신문과 뉴스는 생산적 정보이기 보다는 소비적 상품의 성격이 더 강하다


오히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를 토대로 정보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 되자.